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AI 반도체 시장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흔히 AI 칩이라고 불리는 AI 반도체는 ‘기계 학습(머신러닝)’ 모델을 통해 AI 소프트웨어를 구현한다. 현재 AI 칩 시장의 선두 주자는 미국 엔비디아다. 이 회사는 챗GPT 같은 생성형 AI의 학습·추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 80~9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오픈AI·아마존·애플·메타도 자체 AI 칩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AI 칩 경쟁에서 꼭 필요한 게 바로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와 함께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이다. GAA는 전력 소비를 크게 줄이고 AI 칩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이다. 트랜지스터에서 전류가 흐르는 채널 4개 면을 감싸는 공법으로 현재 쓰이는 핀펫 공정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다. 삼성전자가 3㎚(나노미터·1㎚=10억 분의 1m) 공정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대만 TSMC와 미국 인텔은 차세대 공정에서 이 기술을 적용할 방침이다.
미국 상무부가 중국 AI 칩 자립의 싹을 자르기 위해 GAA 기술과 HBM 반도체의 대중 수출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하이실리콘과 SMIC가 함께 올해 자체 설계 AI 칩의 5나노 공정 생산에 나서기로 한 상황에서 첨단 기술 개발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의 GAA·HBM 대중 수출규제 수위가 높아지면 우리 기업들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HBM 반도체에서도 SK하이닉스가 선도하고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이 추격하는 형국이다.
우리가 반도체·AI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엔비디아처럼 ‘대체 불가능한’ AI 칩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최근 한국의 첨단 공정 반도체 점유율이 31%에서 8년 뒤 9%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이 첨단 기술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경고다. 우리 기업들은 과감한 투자와 혁신으로 초격차 기술 개발을 선도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과 ‘원팀’이 돼서 AI 칩 산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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