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화된 식습관 등으로 동맥경화성 질환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동맥경화성 질환은 뇌혈관·심장혈관·사지혈관 등의 동맥 내막에 지질성분이 침착되며 혈관의 내경이 좁아지는 질환이다. 혈관의 내경이 일정 임계점 이상 좁아지면 뇌·심장·사지근육 등 주요 조직에 필요한 산소요구량을 충족할 수 없는 허혈 증상을 유발한다. 허혈성 심질환은 이같은 질환을 통칭하는 용어다.
허혈성 심질환은 크게 만성과 급성 유형으로 나뉜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급성 심근경색, 불안정성 협심증 등이 대표적인 급성 허혈성 심질환이다. 심장을 왕관처럼 감싼 채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이상이 생겼다는 뜻에서 급성 관상동맥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은 동맥경화로 좁아진 관상동맥의 동맥경화반이 파열되면서 혈전이 생성되고 혈전으로 인해 심각한 혈류장애가 초래될 때 발생한다.
만성 허혈성 심질환의 대표적인 유형은 안정형 협심증과 무증상 허혈이 있다. 안정형 협심증의 빈도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주로 활동 시 흉통과 호흡곤란의 증상으로 발현하는데 휴식을 취하면 증상이 호전된다. 모든 안정형 협심증 환자가 운동 시 흉통이나 호흡곤란으로 내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의 증상은 협심증을 진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전형적인 협심증 증상은 계단을 오르거나 등산, 가벼운 조깅 등 주로 심장에 부하가 가해지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좁아진 관상동맥이 심장근육에 충분한 혈류를 공급하지 못해 흉통 또는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난다. 다만 역류성 식도염, 흉부 근육통 등의 질환에서도 비슷한 양상의 흉통이 나타나므로 감별 진단이 필요하다. 역류성 식도염의 경우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는 과정에서 흉통이 발생한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는 협심증과 비슷한 흉통을 호소하지만 운동과의 연관성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물을 한잔 마시거나 위산분비 억제제 등을 복용하면 빠른 증상 호전을 보인다. 흉골의 연골통을 비롯한 흉부 근육통도 흔히 협심증으로 오인하는 증상 중 하나다. 흉부 전체에 통증이 나타나는 협심증과 달리 흉부 근육통은 대개 손가락으로 짚을 수 있는 범위에서 통증이 발생한다. 누르면 통증이 악화되는 압통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협심증이 의심될 때 시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검사는 운동부하검사다. 러닝머신을 뛰면서 증상의 발생과 심전도상 심근허혈의 징후가 발생하는지 관찰하는 방법이다.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운동부하 심장초음파 검사가 널리 쓰인다. 운동부하 심장초음파는 운동 시 심전도 외에 심장초음파를 통해 심장근육 일부의 수축력이 감소되는 국소벽 운동장애를 함께 관찰하는 방법이다. 직접 운동을 하는 대신 약물을 주입하는 검사도 자주 시도된다. 대표적으로 약물부하 심장초음파, 약물부하 심장 관류스캔(SPET), 약물부하 양성자단층촬영(PET) 및 약물부하 심장 자가공명영상(MRI) 검사 등이 있다. 영상기법은 서로 다르지만 약물을 주입해 운동을 한 것과 비슷하게 심장 부하를 발생시키고 국소벽운동장애 또는 심근의 혈류 분포를 측정함으로써 관상동맥 질환을 진단하는 원리다. 그 밖에 조영제를 투여해 관상동맥의 모양과 협착(좁아짐)을 직접 영상화하는 관상동맥 조영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미국과 유럽심장학회의 최신 진료지침은 이러한 관상동맥 조영 CT를 협심증 진단을 위한 1차 검사로 권고하고 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항은 관상동맥 조영 CT와 관상동맥 석회화 CT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용도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건강검진센터 등에서 많이 시행되는 관상동맥 석회화 CT는 관상동맥의 협착을 진단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다. 즉 협심증 진단에 활용될 수 없다. 관상동맥의 협착을 진단할 수 있는 CT 영상기법은 관상동맥 조영 CT 뿐이다. 최근에는 관상동액 조영 CT와 약물부하를 결합해 심근의 관류까지 진단할 수 있는 영상기법(Perfusion CT)도 협심증 진단에 활용되고 있다.
협심증으로 진단되면 일차적으로 약물치료를 시도한다. 혈압과 맥박수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해 심근의 부하를 줄여주기 위해 흔히 고혈압 치료에 사용되는 약제가 쓰인다. 증상의 호전이 없으면 혈관을 확장시키는 약제를 추가하고 동맥경화의 진행 자체를 억제하기 위해 콜레스테롤 강하 치료를 병행한다.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흡연·비만·당뇨·만성콩팥병 등 동맥경화의 위험인자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치료에도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되면 침습적인 치료를 고려하게 된다. 관상동맥조영술을 통해 관상동맥이 90% 이상 협착된 것으로 확인되면 풍선확장술, 스텐트 삽입술과 같은 관상동맥중재시술이나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이 필요하다. 90% 이하의 중등도 협착을 보이는 환자는 해당 관상동맥에서 ‘분획혈류예비력(Fractional Flow Reserve)’을 측정해 20% 이상의 혈류장애를 동반한 경우에만 시술 또는 수술을 시행한다. 이 때 순환기내과와 심장외과 전문의, 환자의 의견을 모두 종합해 재관류술의 방법을 결정하는데 충분한 사전정보에 근거한 환자 본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