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대선에서 ‘리턴매치’가 유력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은 대부분 판이하게 다르지만 잘 들여다보면 공통점도 적지 않다. 기후변화 대응이 우선(바이든)이냐, 아니면 미국 에너지가 우선(트럼프)이냐를 놓고 갈라선 에너지 정책에서도 원자력발전만큼은 양측의 정책 방향이 거의 일치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탄소 중립의 징검다리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효율적인 에너지원으로 원전을 내세우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미국은 원전 기술의 종주국이지만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원전 산업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사고 여파로 신규 원전 건설이 사실상 중단된 데다 천연가스 가격 하락 탓에 원전이 설자리를 잃은 탓이다. 지난해 조지아주에서 상업운전을 시작한 보글 3호기와 4호기는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34년 만에 준공된 원전이라는 상징성은 있으나 웨스팅하우스 파산 등의 영향으로 준공이 7년이나 지연됐고 건설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탈원전 이후 다시 원전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원전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원전 부활’을 공식화한 사람이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취임 첫해인 2017년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 원자력 산업을 다시 부흥하겠다고 선언했다. 보글 3·4호기 건설에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고 소형모듈원전(SMR) 부지를 선정하며 국가원자로혁신센터(NRIC)를 설립한 것이 트럼프 행정부 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의 집권 2기 공약인 ‘어젠다 47’에서도 “원자력규제위원회를 현대화하고 기존 발전소를 계속 가동하는 한편 혁신적인 SMR에 투자함으로써 재임 기간 중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원자력에너지 생산을 지원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취임 첫해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원으로 탄소 배출 없는 ‘무공해 전력’인 원전을 명시했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는 노후 원전 재가동에 60억 달러를 투입하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청정에너지 세액공제 대상에 원전을 포함했으며 SMR 개발에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달 미시간주 팰리세이즈 원전 재가동을 위해 약 15억 달러 규모의 대출을 지원할 예정인데 이는 노후 원전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이처럼 ‘미국 원전 굴기’에 나선 배경에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안보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말 세계 최초로 SMR을 상업용으로 가동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만 원전 10기의 건설을 승인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를 놓고 미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대규모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해외 원전 건설을 늘리고 있다. 러시아도 국영 에너지 기업 로사톰을 앞세워 세계 각국에서 24기의 원전을 건설 중이며 SMR의 필수 연료인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공급망을 움켜쥐고 있다. 미국이 원전 산업에 손을 놓은 사이 중러가 글로벌 원전 시장을 야금야금 장악해온 것이다.
이처럼 에너지 패권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원전을 둘러싼 미국의 선택지는 분명해지고 있다. 스타일이 정반대인 전·현직 대통령 간의 리턴매치로 정책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분명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고 미국은 원전 산업 확대에 나설 것이라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미국이 아직 상용화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SMR을 개발도상국 등에 수출하기 위해 외교적 영향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중러에 뒤처질 수 없다는 미국의 초조함을 방증한다. 우리 정부도 원전 수출 확대에 힘을 쓰고는 있지만 단순히 기술과 가격만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됐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중러 간의 복잡한 정치경제학적 함수를 풀어내면서 그 속에서 실익을 찾는 고도의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