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슈퍼 코끼리’에 비견된다. 중국(14억 2570만 명, 유엔 2023년 기준)을 넘어선 인구 대국(14억 2860만 명), 베트남(중위연령 32세)을 따돌릴 만큼 젊은 노동력(29세),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면서도 미국 중심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린치핀으로서 위상을 키워왔다.
그러면서도 인도는 잠재력에 비해 2% 모자란다는 말을 들어왔다. 분열된 정치, 철도·항만 등 낙후된 인프라 등으로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의 일원인 중국에 비해 경제가 열악하다는 평가를 감수해야 했다.
이런 인도 경제가 깨어나고 있다. 2014년 취임 이후 올해 총선을 통해 3연임이 유력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안정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제조 기지 중국의 새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일 찾은 인도 뉴델리는 활기가 넘쳤다. 거리에서는 일본 자동차 기업 스즈키의 자회사인 마루티스즈키의 차량이 쉽게 눈에 띄었고 시내 중심가는 다국적 기업의 입간판으로 도배되다시피했다. 라지브 쿠마르 전 인도국가개혁위원회(NITI Aayog) 부의장은 “인도 기업들은 한국 기업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서구권 기업을 비롯해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기업들이 중국 바깥에서 생산처를 찾고 있는 상황을 활용해 제조업 역량을 키우고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모디 총리의 외국 기업 유치 전략은 인도 제조업 확대 방침과 맞물려 있다. 인도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로는 국내총생산(GDP)의 10%대 수준에 불과한 낮은 제조업 비중이 첫손에 꼽힌다. 산업화가 완료되기도 전에 서비스업이 인도 경제의 대다수를 차지해 양질의 일자리와 높은 부가가치 창출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모디 정부는 인도 제조업의 기술 고도화와 글로벌 공급망 편입을 위해 외국인직접투자(FDI) 확대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국적 기업 유치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점도 적극적인 FDI 추진 정책의 배경이다. 실제 인도의 FDI 유입액은 2014년 451억 달러에서 2022년 710억 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모디 총리는 중국 공급망을 대체할 아시아 주요 14개국을 의미하는 ‘알타시아’의 핵심으로 인도를 띄우기 위해 다양한 투자 유인책을 펴고 있다. 2020년에 발표한 생산연계인센티브(PLI) 정책이 대표적이다. 모바일·의약품·자동차 등 14개 핵심 산업에 대해 260억 달러(약 34조 원) 규모의 지원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매출·부가가치 등에서 일정 기여를 하면 5년에 걸쳐 매출액 증가분의 4~6%를 인센티브로 받는 구조인데 수혜 기업에는 인도 기업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애플·폭스콘 등 외국 기업을 총망라한다.
모디 총리는 반도체 기업 유치를 위해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보조금으로 투입하는 ‘세미콘 인디아(Semicon India)’ 정책도 추진 중이다. 아울러 교통·전력 인프라 강화 목적으로 100조 루피(약 1500조 원)를 투입하는 ‘가티샤크티’ 프로젝트도 가동하고 있다. 아이폰의 90% 이상을 중국에서 만들던 애플이 인도에서 아이폰의 25% 이상을 생산할 계획을 밝히고 구글·아마존·마이크론 등도 연이어 인도 투자 확대 방침을 내놓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최근에는 인도 정부가 전기차 업체 테슬라 공장 유치를 위해 수입 전기차의 관세 인하를 검토한다는 소식도 있었다.
일자리와 연계된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을 위한 각종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기업을 부자 프레임으로 옭아매 지원에 인색한 우리와는 확연히 차별되는 대목이다. 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델리사무소장은 “모디 총리는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상관없이 투자를 유치하면 자연스럽게 고용이 늘고, 소득이 증대되며, 다시 기업이 투자를 확대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다”며 “안정적인 정치 리더십이 경제 부흥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인도가 환골탈태의 기회를 잡고 있다”고 짚었다.
이런 노력은 경제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침체 속에서도 6.3%(IMF 기준)의 고성장을 일궜다. 신년에도 6%를 훌쩍 넘는 성장이 기대된다. 이는 모디 총리의 집권 연장으로 귀결돼 정치적 불안을 잠재우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도 현지 기업 관계자는 “총선으로 정권이 바뀔 경우 가티샤크티 등 여러 혁신적인 정부 프로젝트들이 중단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며 “인도가 중국에 필적할 제조업 강국이 되려면 아직 상당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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