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서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는 천연가스와 석유보다 귀중한 자원으로 평가 받습니다. 노르웨이는 이런 인식을 만들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왔습니다”
안네 카리 한센 오빈 주한 노르웨이대사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주최한 포럼W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날 노르웨이가 어떻게 손꼽히는 성평등 국가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소개하며 “문화가 그대로 바뀌는 것을 그저 기다려서는 안 되며 정치적 노력, 제도와 인센티브를 모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간한 성별 격차 보고서에서 노르웨이는 성평등 수준이 2번째로 높은 국가로 선정됐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15~64세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약 75%로 유럽에서 가장 높다. 정규직 기준으로 여성 임금은 남성의 90% 수준에 달해 남녀 임금 격차도 작은 편이다. 여성 의원 비중도 45%에 달한다.
그 배경에는 노르웨이가 수십 년 전부터 정비해 온 각종 제도와 복지 혜택이 있다는 것이 오빈 대사의 설명이다. 1981년 노르웨이의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된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총리는 취임 이후 내각의 40%를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오빈 대사는 “아이들은 물론 모든 여성들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정치적인 행동이 (성평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려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후 노르웨이는 2003년 ‘회사법’을 개정해 세계 최초로 공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최소 40%로 의무화하는 할당제를 도입했다. 이를 시행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의 해산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오빈 대사는 “당시만 해도 노르웨이에서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며 “하지만 제도를 제안한 장관이 이사진의 다양성은 곧 회사의 자산이고, 이사회의 역량도 강화될 것이라고 (기업과 의회를) 설득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것은 그 장관이 교역산업을 담당하는 남성 장관이었다는 점”이라며 “시간이 흘러 현재 약 2만 개의 기업이 할당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노르웨이 사회의 높은 정치 신뢰도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성의 사회 참여를 뒷받침하는 육아 휴직 제도도 빼놓을 수 없다. 노르웨이에서는 부모에게 49주의 유급 육아휴직이 주어지는데 그 중 15주는 반드시 아빠가 써야 한다. 이는 엄마에게 이월되지 않기 때문에 아빠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이자 당연한 권리로 인식된다. 오빈 대사는 “남성 의원과 장관들도 나서서 육아휴직에 들어가 사회 전반에 (남성도 육아휴직을) 쓰라는 신호를 보냈다”며 정치권의 역할을 강조했다. 2020년에 아빠가 된 노르웨이 남성들의 육아휴직률은 93%에 달한다.
오빈 대사는 한국의 성평등과 관련한 질문에 “모든 국가들이 다른 출발점에 서 있고 상황이 다르다”며 “노르웨이 상황을 지켜보며 느낀 점은 사람들의 태도와 문화를 바꾸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각 사회에 알맞은) 규정과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며 “노르웨이 역시 현재도 (성평등) 제도를 계속해서 수정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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