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도를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던 전 삼성전자 임원 A씨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반도체와 같은 핵심 기술이 한 번 밖으로 새어나가면 국가 경쟁력 전반을 흔들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처벌은 범죄의 중대성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서다.
수원지법 형사 14단독은 지난 10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보석을 허가했다. 보석 보증금은 5000만원이다.
A씨는 2018년 8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인 반도체 공장 BED와 공정 배치도, 공장 설계도면 등을 부정 취득·부정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015년 7월 싱가포르에 반도체 제조업체를 설립한 뒤 중국 청두시와 대만 전자제품 생산업체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국내 반도체 업계 인력 200여명을 영입한 바 있다. 이는 산업기술 관련 인력 유출 중 최대 규모다.
그는 이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그대로 본뜬 생산설비를 지으려 했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에 따르면 청두시 '삼성전자 복제 공장'에서는 삼성전자 기술을 활용한 2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급 D램 반도체가 생산되고 있었으며 단순히 설계도뿐 아니라 반도체 생산을 위한 핵심 공정 기술들이 통째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20나노급 반도체 기술은 도달하기는 어렵지만 한 번 달성하면 상위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게임체인저 기술"이라며 "국가 경쟁력을 해치는 엄중한 범죄로 판단했어야 하는게 맞다"고 지적했다. 다만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혐의를 줄곧 부인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보석이 또 다른 산업스파이를 양산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대통령실에서 기술유출 관련 합동회의가 있은 지 불과 이틀 만에 법원이 A씨의 보석을 결정하면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 8일 국가정보원과 법무부 등 10개 부처·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산업기술 보호 관련 합동 회의를 열고 '범정부 기술유출 합동 대응단'을 출범시켰다.
실제 법원의 관대한 처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 기술 유출 범죄는 최근 10년 동안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올해 2월부터 10월까지 9개월간 산업기술 유출 등 경제안보 위해 범죄를 특별 단속해 해외 기술 유출 21건을 포함한 총 146건을 송치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 안팎에서는 해외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억제력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법원의 양형 기준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서울경제신문이 최근 5년간(2018~2022년) 대법원 사법연감을 분석한 결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리된 1심 형사 공판 사건 총 97건 가운데 실형(유기형) 선고를 받은 사건은 9건에 불과했다. 특히 이 기간 산업 기술 유출 사건의 무죄 선고 비율은 29.9%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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