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이 부동산 임대업 겸직 신고 없이 관련 상임위원회 활동을 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의원의 겸직 활동에 별다른 제약이 없는 데다 신고를 하지 않아도 후속 조치가 미미한 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지방정부·의회 권한이 강화된 만큼 의원 겸직 제한 등 책임도 뒷받침되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이 3일 서울시의원 겸직 현황(8월 기준)을 분석한 결과 의원 12명(국민의힘 8명, 더불어민주당 4명)이 임대업 겸직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 7월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올해 3월 기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공고와 서울시의원 겸직 현황 자료를 비교해 시의원 29명이 임대업건물임대채무(임대 보증금)를 보유하면서 임대업 겸직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중 12명은 경실련의 지적 이후에도 겸직 신고를 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지방의원이 당선 전 겸직을 갖거나 임기 중 취임한 경우 지방의회 의장에게 서면으로 신고해야 한다. 의장은 신고 내용을 연 1회 이상 홈페이지에 게시하거나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공개해야 한다. 지방자치법상 공무원이나 협동조합 임원 등 일부 직업을 제외하면 지방의원의 겸직은 허용된다.
임대업을 겸직하면 관련 상임위에서 배제하거나 겸직 업무에서 사임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올해 서울시의회 의장이 상임위를 교체하거나 사임을 권고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현재 임대업을 겸직하는 의원 15명이 도시안전건설위원회·주택공간위원회·도시계획균형위원회·교통위원회 등 부동산 가격이나 임대료에 영향을 미치는 상임위에 소속돼 있다. 이 중 임대업 겸직 신고를 하지 않은 의원은 6명이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임대업은 어느 상임위에 가든지 이해상충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상임위 교체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상임위 교체나 겸직 보수 공개는 각 의원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해상충 등 공직자의 윤리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겸직 신고가 의무화돼 있다. 하지만 미신고 시 따르는 처벌에 대한 규정이나 겸직과 관련된 상임위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의원들의 신고 책임 의식이 상당히 저조하다. 한 시의원은 “(부동산 겸직 미신고) 지적을 알고는 있지만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임대사업자 등록증을 분실해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해명했다.
유보수 겸직 활동을 하는 지방의원들에 대한 견제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국회의원은 국회법에 따라 국무총리·국무위원, 공익 목적의 명예직, 정당법에 따른 정당직을 제외하고 겸직이 불가능하다. 반면 지방의원은 지방자치법상 대부분의 겸직 활동이 가능할 뿐 아니라 관할 지방자치단체와 출자 관계 등으로 얽혀 있지 않으면 겸직에서 사임하지 않아도 된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지침(지방의회 의정 활동 정보 공개 가이드라인)상 겸직 보수 유무만 공개하면 되기 때문에 보수가 얼마인지 밝힐 필요도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서울시의원의 유보수 겸직 신고 건수는 올해 3월 35건에서 8월 51건으로 5개월 새 16건 증가했다. 8월 신고된 유보수 겸직으로 임대업(21건)이 최다였지만 대학교수(4건), 변호사·법무사 등 법률 서비스(3건) 등도 많다. 식당·주유소·카페·부동산중개소 대표 등 자영업 사장님도 많다.
지방의원 겸직 규정이 느슨해진 데는 지방자치법이 아직도 1990년대에 멈춰 있기 때문이다. 1991년 지방선거가 30년 만에 부활할 당시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그러다 2003년 지방자치법에서 무보수 명예직 조항이 삭제되면서 지방의원이 보수를 받게 됐는데 겸직 금지 규정은 30년 넘게 크게 바뀌지 않은 채로 방치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방의회를 관할하는 독립 법률을 만들고 현행법보다 의원 겸직 금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지방의회법안 4건이 발의됐지만 지방의회의 인사·예산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어서 겸직 금지 규정 등 보완이 필요한 상태다. 행안부의 한 관계자는 “지방의원들의 겸직 활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법 제정·개정 등 여러 가지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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