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집권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제조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내놓은 정책이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이다.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해 제조업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인도를 세계의 공장으로 변모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모디 총리는 제조업 비중을 25%까지 확대한다는 목표 아래 주력 업종 25개 선정, 기업 친화적 제도 개선 등의 세부 추진 과제도 마련했다. 이 가운데 인도 정부가 가장 주안점을 둔 분야는 반도체다. 인도는 미중 전략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국을 대신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주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 파격적인 지원책을 제시했다. 2021년에는 100억 달러의 보조금 지급 계획을 내놓았고 지난해는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인도에 공장을 설립할 경우 시설비의 70%를 인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급하기로 했다.
인도 정부의 지원책이 나오자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의 투자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은 모디 총리의 고향인 구자라트에 27억 5000만 달러 규모의 반도체 후공정 공장 건설 계획을 밝혔고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인 AMD는 벵갈루루에 4억 달러의 디자인센터를, 반도체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도 같은 지역에 4억 달러의 엔지니어링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대만의 폭스콘도 인도에 반도체 시설 조성을 목적으로 5년간 20억 달러를 투입한다.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거는 나라는 인도뿐만이 아니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대만은 물론이고 동남아 국가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세액공제는 물론이고 보조금 지급에 대출까지 제공한다. 상무부가 운영하는 382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통해 설비투자 총액의 5~15%를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반도체 설비 건설과 장비 구입에 들어간 비용의 25%는 세액공제를 해준다. 여기에 제조 시설 건설에 필요한 자금도 대출해준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지난 1년 동안 전 세계 기업들의 공식화된 투자 규모만 1660억 달러에 달한다.
EU도 430억 달러 규모의 ‘EU반도체법’ 시행을 확정했고 일본은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3686억 엔을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태국·싱가포르·베트남 등도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편승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 세계가 첨단산업 유치 전쟁에 뛰어든 모습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사정이 어떤가. 올 3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밝힌 국가 첨단산업 육성 전략부터 보자. 정부는 반도체·인공지능(AI)·디스플레이 등 6대 첨단산업에 5년간 550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겉모습만 보면 우리 정부도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정부 지원은 취득세 감면, 인허가 절차 개선, 세액공제 등이 고작이다. 투자세액공제의 경우 대기업·중견기업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올리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는 원래 법인세율 자체가 높은 데다 최저한세율도 높다. 그런 상태에서 찔끔 세액공제에 그치다 보니 같은 금액을 투자해도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기업은 대만보다 내야 할 세금이 30%이상 많다. 임시 투자세액공제 10%를 추가했지만 이것도 올해뿐이다. 미국·EU·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인도까지 지급하는 보조금은 전혀 없다. 정부가 이처럼 기업 지원에 인색한 것은 다분히 야당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이 “대기업에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며 완강하게 버티자 정부의 기업 지원도 어정쩡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첨단산업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지금은 산업 대전환의 시기다. 기존 주력 산업이 중국 등 경쟁국에 따라잡힌 상황이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충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런 때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대책으로는 다른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만다.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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