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미국프로야구(MLB)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타자 미키 맨틀의 신인 카드가 스포츠 수집품 사상 최고액인 1260만 달러(약 168억 원)에 낙찰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렇듯 해외에서는 트레이딩 카드가 하나의 문화이자 산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리서치앤드마켓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스포츠 트레이딩 카드 시장은 2019년 47억 달러(약 6조 원)로 평가됐으며 2027년에는 62억 달러(약 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트레이딩 카드는 수집 전문가들만의 영역이었다. 스포츠 카드 부문에서도 대원미디어가 2018년부터 야구 카드를 생산하고 있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프로축구연맹과 6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의 글로벌 스포츠 카드 브랜드 기업인 파니니가 이달 1일 출시한 ‘K리그 파니니 트레이딩 카드’가 팬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시장으로서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포켓몬빵이 ‘띠부씰’ 수집 신드롬을 몰고 온 것처럼 K리그에도 파니니 카드 수집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달 25일 세븐일레븐 모바일 앱에서 사전 판매한 5000팩이 30분 만에 완판된 데 이어 26일 추가 판매한 1만 5000팩도 2시간 만에 매진됐다. 카드의 공식 유통업체인 세븐일레븐의 한 관계자는 “정식 발매 이후 현재까지 총 120만 팩이 판매됐다”며 “2020년부터 줄곧 완구 카테고리 판매 수량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미니카 완구 ‘랜덤 토미카’를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K리그 파니니 카드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보급형 카드인 ‘리테일 컬렉션’이다. 1팩에 2장씩 들어 있는 1000원짜리 리테일 컬렉션은 세징야(대구)와 이승우(수원FC) 등 K리그1 인기 선수 100명, 그리고 홍명보·이동국·이천수 등 K리그 레전드 7명, K리그1 구단별 엠블럼과 K리그 엠블럼 카드로 구성됐다. 선수 친필 사인이 포함된 ‘초레어템’ 카드 등 희소성이 다른 다양한 옵션이 랜덤으로 들어가 있다. 연맹 관계자는 “K리그 팬들에게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자 기획했다”며 “K리그의 가치를 시장에서 입증하고 경기 날 또는 경기장에서만 K리그를 소비하는 게 아닌, 언제 어디서나 전 연령층이 K리그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K리그 파니니 카드의 인기는 ‘카드 트레이딩’이라는 새로운 문화로 이어졌다. 온라인 축구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자신이 보유한 파니니 카드를 공개하면서 교환을 제안하거나 희소성 높은 카드를 판매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포항스틸러스에 따르면 마스코트인 ‘쇠돌이’의 SNS를 통해 열흘 동안 교환된 카드만 총 200장에 달한다. 포항은 이달 16일 수원FC와 홈경기에 ‘파니니 교환존’을 설치해 팬들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도 했다.
연맹은 파니니 카드의 인기에 힘입어 고급형 한정판 카드인 프리즘 하비 컬렉션을 이달 말 내놓을 예정이다. 추가 생산이 없는 완전 한정판으로, 오프라인은 K리그 경기장 머천다이징(MD) 숍과 전용 카드 숍, 온라인은 무신사에서 독점 판매한다. 연맹 관계자는 “파니니 카드 초기 판매량이 기획 당시의 예상 수치를 뛰어넘었다”며 “아직 초반이라 지속성이 중요한 만큼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카드를 기획 중”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트레이딩 카드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카드의 보관 상태, 제작 연도, 희소성 등이다. 선수의 네임 밸류도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다. 국내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K리그 파니니 카드가 수십 년 뒤 수억 또는 수십억 원에 거래되는 일도 상상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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