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오랜 논쟁거리인 사형제가 헌법재판소 심판 대상에 오르면서 향후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사형 폐지와 대체 형벌 입법 청원운동을 진행하는 등 종교계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생명을 빼앗는 극형으로 참혹한 범죄를 억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법무부는 앞서 형법 41조·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공개 변론에서 반대 뜻을 분명히했다. ‘계속해서 잔혹하게 생명을 해하는 등 인륜에 반하고, 공공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범죄자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게 정의의 발로’라는 입장이다. 사형제가 헌정 사상 3번째로 헌재 심판대에 올랐으나 찬반 논쟁이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3번째 헌재 판단…인간 존엄·가치 위반 여부 쟁점=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해 7월 사형제 위헌심판 공개 변론 이후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이는 2018년 부모 살해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된 후 항소·상고가 기각돼 수감 중인 A씨가 2019년 2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함께 사형제 헌법소원을 낸 데 따른 것이다. 심판 대상은 형법 제41조·제250조 제2항 중 ‘사형’ 부분. 사형제가 헌법 제10조가 규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위반되는지 또 본질적인 생명권을 침해하는지가 쟁점으로 꼽힌다. 형법 제42조는 죄를 저질렀을 때 받을 수 있는 형의 종류 가운데 하나로 사형을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제250조 2항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7월 공개변론에서 A씨 측은 “사형제는 범죄인을 도덕적 반성과 개선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라며 “사형제보다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절대적 종신형 등으로 범죄인을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해 사회 보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거로는 사형제도의 범죄 억제효과를 입증할 화학적 연구결과가 없고, 오판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반면 법무부는 “사형제에 따른 생명의 박탈을, 극악무도한 범죄로 무고하게 살해당했거나, 살해당할 위험이 있는 일반 국민의 생명권 박탈과 같게 볼 수 없다”며 “두 생명권이 충돌하면 무고한 일반 국민의 생명권 박탈 방지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오판 가능성에 대해서는 사법제도 자체의 숙명적 한계이지 사형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2차례 합헌에 반대 뜻 분명히 하는 국내외 인권·종교계=사형제가 헌재 심판대에 오르는 건 1996년과 2010년 이후 세 번째다. 1996년에는 살인죄의 법정형으로 사형을 규정한 형법 250조(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자기 또는 배우자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재판관 7(합헌)대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2010년에는 형의 종류를 명시한 형법 41조 1호(사형)에 대해 5(합번)대4(위헌)로 헌재는 ‘헌법 취지에 맞다’ 판단했다. 2차례 합헌 결정 이후 사형제가 다시 헌재 심판 대상이 되자 인권단체·종교계 등에서는 폐지론에 힘을 싣고 있다. 휴먼라이트워치(HRW)와 이탈리아인권연맹(FIDU), 세계사형제폐지국제연대(WCADP) 등 32개 인권단체의 경우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국의 사형 폐지’라는 제목의 공동 서한을 보냈다. 지난 1월 유엔(UN) 인권이사회의 한국에 대한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에서 31개국이 사형제 폐지와 ‘사형펴지를 위한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 의정서’ 비준을 권고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한국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다시 요구한 것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도 지난달 13일 국회에 사형 폐지와 대체 형벌 입법 청원 운동에 동참한 7만8543명의 서명을 전달했다. 이를 통해 2ㅣ난해 10월 발의됐으나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인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 입법은 촉구한 것이다. 해당 법안에는 형법 등이 규정한 형벌 중 사형을 폐지하고 이를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앞서 2월 정부에 유엔 인권이사회의 사형제 폐지 권고를 수용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우리 정부가 마지막 사형을 집행한 건 1997년 12월 30일이다. 이후에는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현재 59명의 사형수가 복역 중으로 알려졌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제한된 증거로 죄질을 판단하는 법원이 내린 사형 선고가 오판이라면 되돌릴 길이 전혀 없다”며 “현재와 같이 집행을 하지 않으면 무기징역이 사형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제도상 사형을 유지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준 권력으로 생명을 빼앗는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른바 ‘사법살인’으로 전근대적 처벌이라는 게 해당 변호사의 생각이다.
◇여론은 사형제 유지…“죄 지으면 상응하는 벌 받아야”=반면 여론은 사형제에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7월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겨로가 69%가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3%에 불과했다. 다만 2018년 인권위가 설문조사한 결과 ‘사형제 폐지에 찬성한다’고 답한 비율은 20.3%였으나, ‘대체 형벌 도입을 전제로 폐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6.9%로 높게 나타났다. 사형제를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는 하나,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대체 형벌을 도입하는 데는 찬성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31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살인 피의자의 최후진술에 이목이 집중된 점도 ‘남의 생명을 앗아간 이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는 여론의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아내와 10대 두 아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40대 가장 A씨는 “모든 일은 제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저에게는 삶이 더 이상 의미 없는 상황인데, 사형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사형(집행을) 안 하지 않나”라며 “저에게 잠시나마 자유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살인 현장에 본인이 없었던 것처럼 꾸미기 위해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등 계획된 살인이라며 A씨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어 “피고인의 반혹한 범행으로 아내는 사랑하는 두 자녀가 아버지에게 살해당하는 걸 목격하며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고, 두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며 “범행을 자백하고 있으나 다중인격장애와 기억상실을 앓고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점을 보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고위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사형 선고를 받는 피의자들을 보면 대부분이 3~4명가량의 선량한 (사람) 생명을 앗아간 이들”이라며 “불법을 저지른 생명과 선량한 생명을 중에 적어도 후자를 보호하는 게 법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국민 정서상 응보이자 정의의 정서로 예방효과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사형제는 존치돼야 한다”며 “중죄에 대해 위하효과가 없다면 자칫 살인을 저질러도 국가가 목숨은 보장한다는 의미로도 잘못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 뼈대가 굵은 한 변호사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니 법원도 사형보다는 무기징역이나 수십년 징역형을 선택하는 등 형벌의 균형이 맞지 않는 현상까지 나타나는 듯 보인다”며 “3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중죄인에 대해 실제 집행하지 않는 건 대법원 판결마저도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흉악범을 사형하지 않는 건 국민 법감정에도 맞지 않다”며 “형집행법(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서는 일반 수형자와 사형수는 처우가 다르게 돼 있어 오히려 특혜를 받는다는 느낌도 받는다”며 “사형제가 폐지되면 모르겠으나, 존치되는데도 집행을 하지 않는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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