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 4월 서울서부지검에 A 암호화폐거래소(A 거래소)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됐다. 검찰·경찰은 피해자 고발에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시작은 순조로왔다. A 거래소가 내부 데이터베이스(DB)를 임의 제출했고, 검찰은 A거래소 B대표와 C 전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이 수사 협조 등 사유로 같은 해 3월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설상가상 A 거래소가 5~6개월 후 돌연 파산하면서 추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의 길까지 막혔다.
검찰은 곧바로 특단의 조치에 돌입했다. 우선 대검찰청 사이버수사과에 180여건의 전자지갑 전송내역 분석을 의뢰했다. 은행 계좌에서 오가는 돈을 쫓듯, 전자지갑에서 거래되어 온 암호화폐 흐름에 대한 추적에 본격 착수한 것이다. 특히 암호화폐 수사 경험이 풍부한 오광일 검사에게 사건을 재배당했다. 전자공학과 출신인 오 검사는 자타가 인정하는 검찰 내 암호화폐 수사 전문가다. 지난해 2월께 발간된 ‘서민다중피해범죄 사례 및 수사 착안 사항’에서도 오 검사는 암호화폐 부분을 작성을 담당한 바 있다. 각종 암호화폐 수사를 한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검 분석의뢰, 전문검사 투입 등 특단의 조치는 성과로 이어졌다. 검찰 조사 결과 B 대표 등은 2018년 11월께 100억원이 입금된 것처럼 A거래소 DB를 조작했다. 실제 자금이 있는 듯 꾸며 투자자를 꾀는 방식이었다. 이후 투자자 자금이 유입되자, 이들은 암호화폐로 바꾸고 정상거래가 되는 타 거래소에서 현금화했다. 확보한 자금은 일부 빼돌리고, 나머지는 투자자들에게 제공했다. 이른바 ‘돌려막기’ 수법이었다. 또 ‘암호화폐에 투자하면 거래소 수익의 80%를 배당한다’고 꾀어 4600여만원을 편취했다. 특히 보이스피싱 사건에 A거래소 계좌가 연루됐다고 경찰에 허위 신고해 계좌 거래를 정지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오 검사는 “처음에는 실제로 본인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A거래소 계좌거래가 정지됐다”며 “B 대표 등은 계좌정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직원을 시켜 허위 신고를 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A 대표 등이 돌려막기는 물론 시간끌기끼자 각종 꼼수를 쓴 셈이다. 결국 이들은 △특정경제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사전자기록 등 위작 △위작 사전자 기록 등 행사 △위계 공무집행 방해교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3년 6개월에 걸친 장기 수사에 종지부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검찰은 100억원에 대한 보전 명령을 청구, 법원이 받아들였다. A 대표 등에게 은닉 재산이 있는지 등도 수사 중이다.
오 검사는 “여러 전자지갑에서 거래되는 암호화폐 흐름을 거래내역 분석을 통해 파악했고, 그 결과 혐의점이 한층 명확해 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범죄자들은 암호화폐에 투자한 자금을 바이오 등 다른 사업에 투자한다식으로 투자자들을 속인다”며 “이른바 ‘미끼 상품’에 현혹되지 않도록 투자시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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