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학폭) 가해자가 법정다툼에 나서는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강남·서초·송파·강동 등 이른바 ‘강남 4구’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집행정지신청 비율은 다른 지역 대비 최대 9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지역 학부모들이 입시 불이익에 대한 민감도가 큰 데다,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경제력과 정보를 갖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논란이 된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례와 같이 학폭을 저질러도 학부모 배경 차이에 따라 대응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서울경제가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최근 3년간 교육지원청별 학폭 심의 건수 및 가해자 집행정지 신청·행정소송 제기 건수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우선 강남·서초의 경우 학폭 건수는 많지 않았지만, 행정 소송 비율은 다른 지역 대비 최대 7배 높았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이 집계한 2020~2022학년도 전체 학폭 심의 건수는 총 478건으로 서울시교육청 산하 11개 교육지원청 가운데 5번째로 많았다. 학생 수가 두 번째로 많은 교육지원청임을 고려하면 학폭 발생 비율 자체는 높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가해자 행정 소송 제기 건수는 같은 기간 총 22건으로 전체 심의 건수의 4.6%에 해당했다. 가장 비율이 낮은 북부교육지원청(0.7%)보다 약 7배 높은 수치다. 여의도가 포함된 남부교육지원청(4.1%)을 제외하면 모두 1~2% 수준에 불과했다.
강동·송파는 서울에서 본안 소송에 들어가기 전 처분 효력을 정지시키기 위해 제기하는 집행정지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강동송파교육지원청에서 진행된 전체 학폭 심의 건수는 전체 교육지원청 중 세 번째로 많은 574건이었다. 이 중 집행정지로 이어진 건은 총 26건으로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0.5% 수준인 동부·동작관악·북부교육지원청 3곳에 비해 9배 높은 수치다. 11개 교육지원청 가운데 3곳이 1% 미만, 4곳이 1%대를 기록하는 등 전체 교육지원청의 약 70%가 1%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유독 높은 수치다. 다만 행정소송 비율은 9번째인 1.4%로 집행정지 신청이 실제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었다.
전문가들은 경제력을 비롯한 학부모 배경이 학폭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력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을 수록 자녀의 입시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커 심급당 최소 수백만 원에서 최대 수천만 원에 달하는 소송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물론 실제 억울한 학생이 있을 수 있지만 소송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피해학생 측의 고통은 커질 수 밖에 없다.
김승혜 유스메이트 아동청소년문제연구소 대표는 “이른바 강남4구 지역 학부모들은 진로와 대입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중상층 이상의 경제적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 학력 등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법률 정보 역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학생이 본인의 의견을 말하는 건 정당한 권리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법정 다툼으로 확장시키면서 피해학생도 보호받지 못하고 가해학생도 선도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교육을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관계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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