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주제로 한 서양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다. 초기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보티첼리는 1482년께 메디치 가문의 주문으로 이 그림을 제작했다. 15세기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부유한 가문이었으며 사실상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가는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그중 그들이 가장 총애했던 화가는 보티첼리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도 메디치 가문의 일원이었던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의 결혼 선물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꽃이 만발한 봄의 정원을 배경으로 사랑의 향연이 펼쳐져 있는 것 같은 이 그림 속 장면은 신혼부부의 침실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성경이 아닌 그리스·로마 신화의 주인공들이라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가로 3m가 넘는 대형 화폭에 실물 크기의 인물 여덟 명이 등장하는 이 그림은 우측 화면에서 시작해 좌측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푸른 망토를 걸친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속이 비치는 투명한 옷을 입은 님프를 뒤쫓아 화면 우측에서 등장한다. 제피로스의 양 볼은 바람을 가득 머금고 있으며 그가 따뜻한 훈풍을 쏟아내려 하자 님프의 입에서는 꽃들이 피어난다.
그 옆으로 꽃의 여신 플로라가 꽃잎을 뿌리며 걸어 나오고 화면 중앙에는 비너스가 관람자와 눈을 맞추며 환영의 인사를 건네고 있다. 비너스의 머리 위를 날고 있는 큐피트는 눈을 가린 채 사랑의 화살을 쏠 채비를 하고 있는데 그의 화살이 향하는 곳은 원무를 추고 있는 세 여신이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지팡이를 들어 먹구름을 흩트리며 봄의 정원을 수호하고 있다.
이 그림은 사랑의 결합을 축복하고 예찬하는 매우 관능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르네상스 문화가 생동하던 시기 피렌체인들이 꿈꿨던 행복과 자유에 대한 동경이 봄을 매개로 해 이 그림 속에서 표출되고 있는데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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