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A(42) 경사는 2021년 11월께 거짓 서류로 대출을 받는 이른바 ‘작업 대출’을 알아보다 성명 미상의 한 인물에게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A 경사) 계좌로 3000만 원을 보낼테니 이를 지정한 계좌로 다시 송금하라’는 내용으로 즉 ‘송금 등 거래 실적을 쌓으면 대출을 해주겠다’는 유혹이었다. A 경사는 돈을 입금받은 뒤 수상한 생각이 들어 대출 업체명을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 해당 업체가 보이스피싱 조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민을 거듭하다 작업 대출에 연루된 사실이 경찰에 알려질 경우 직업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3000만 원을 보이스피싱 조직 계좌로 송금했다.
A 경사의 잘못된 선택은 곧 수사로 이어졌다. 기존 대출금을 변제하면 햇살론 등 저금리 상품으로 바꿔준다는 거짓말에 속은 30대 피해자가 A 경사를 경찰에 고소해서다. 사건을 맡은 시흥경찰서 B(39) 경사는 A 경사를 소환 조사하는 등 두 차례 만났고 꼬인 실타래는 한층 더 꼬이기 시작했다. A 경사는 처음 만난 B 경사에게 “자신은 사실 경찰이고 생활고에 시달렸다”며 사건 무마를 부탁했다. 두 사람은 A 경사를 참고인 조사만 하고 사건을 관리 미제로 종결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또 관리 미제 종결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결정 취지로 불송치 종결하거나 검찰 송치 후 무혐의를 주장하는 등 방안을 논의했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인지 알면서도 이를 총책에 전달하거나, 해당 수사를 무마하려던 현직 경찰 2명이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대구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조홍용)는 경북경찰서 A 경사를 사기방조 및 범죄 수익 은닉 규제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또 시흥경찰서 B 경사(현 안산단원서 소속)를 직무유기와 증거은닉,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포렌식 자료에 누락된 부분이 있는 등 이상한 부분을 포착하고,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 A·B경사의 범죄 혐의를 포착했다.
A 경사는 본인 게좌에 들어온 3000만 원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보이스피싱 조직원 지시에 따라 조직 관리 계좌로 송금한 혐의를 받는다. B 경사는 A 경사의 수사 무마 청탁에 해당 사건을 미제 사건으로 종결하기 위해 후속 수사를 지연하고, 피해자의 증거 제출을 방해하는 등 혐의를 받는다. 다만 두 사람은 초면으로 B 경사가 A 경사를 위해 불법행위까지 저지른 구체적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B 경사는 A 경사에게 돈을 받거나 약점을 잡힌 것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A 경사는 피해자에게 피해액 3000만 원에 훨씬 못 미치는 300만 원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하는 등 농락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검찰은 앞으로도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없도록 송치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한 직접 보완 수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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