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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룰만 지키면 될까요?[김광수의 中心잡기]

9일 외통위 국감, 정재호 대사 언론관 질타

정 대사 "백브리핑 보도 규정 어겼다 주장"

대사관측, 기자단과 관계 개선 노력 없어

보도 논란 후 취재 활동 제한 조치 강화돼

국감 취재진 최소화, 취재 방식도 통제해

정재호 주중대사가 9일 중국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에서 자료를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베이징특파원단




"대 언론활동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대언론활동을 활발하게 해서 한국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소통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이가 있다."(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코로나19 이후 중국과의 네트워크 강화, 코로나19로 피해받은 교민사회와 소통을 강화해야 할 그 시간에 특파원들과 싸움하고 있느냐, 브리핑도 냉소적이었다고 하는데."(김홍걸 무소속 의원)

"대사와 특파원단의 관계는 특권도 아니고 배려도 아니고 의무다. 특히 4대 강국은 중요하기 때문에 기자들하고 허심탄회한 소통의 시간을 신뢰를 바탕으로 늘려주실 것은 건의한다."(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9일 열린 주중 한국대사관(이하 주중대사관) 국정감사에서 다수 의원들이 정재호 주중대사의 대 언론활동 행태를 지적하고 나섰다.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하는 국감인만큼 사드 문제를 비롯한 한중간 현안이나 대중 외교 활동 전반에 대한 질의가 예상됐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정 대사와 언론의 불편한 관계가 가장 주목받았다.

이원욱, 김홍걸, 박병석 의원은 차례로 정 대사와 특파원단의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을 지적하며 언행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특히 김홍걸, 박병석 의원은 추가질의나 보충질의시간까지 할애하면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거론하며 정 대사를 질타했다. 기자 출신인 박 의원은 정 대사가 발언하며 사용했던 단어 하나까지 지적할 정도였다. 부임한 지 두 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아 국감에서 다룰 내용이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여러 의원들이 반복해서 정 대사를 비판할 정도였다면 문제의 심각성이 전해질 정도였다.

의원들의 지적에 정재호 대사는 일부 표현이 부적절했다고 사과했지만 그 책임이 기자들에게 있다고 정면 반박했다. 그는 브리핑 과정에 모두발언을 제외한 질의응답은 백브리핑으로 간주해 실명보도를 하지 않는 것일 룰이라며, 룰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적시해 실명 보도한 기사가 문제였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종 발언에서도 “룰을 지켜야만 상호 신뢰에 의해서 정보가 교환될 수 있다”며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정 대사의 말처럼 과연 룰만 지켜진다면 상호 신뢰가 이어질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백브리핑의 룰에 대한 인식부터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백브리핑을 기사화 할 때 실명을 공개하지 않거나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한 발언에서 보도 자체를 하지 않기로 룰을 정한 것은 외교 관계나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해서다. 백브리핑에서 나온 발언이라도 공적인 영역과 관계없다면 실명 보도가 이뤄지는 것을 문제삼지 않는다. 청와대, 국회 등에서도 사안에 따라 백브리핑 과정 중에 취재원과 언론의 대화가 발언자의 실명을 적시해 기사화 되는 것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오프더레코드로 상호 약속을 하더라도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서는 이를 파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룰을 지키는 것이 상호 신뢰를 만드는 전제 조건이 아니라 서로간의 신뢰가 쌓인다면 룰은 당연히 지켜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룰이 깨졌다는 것을 빌미로 상호 신뢰가 틀어졌다면 바로잡기 위한 노력도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걸 빌미로 언론과의 접촉을 기피하고 적대시하기까지 하는 대사관측과 정 대사의 태도다.

지난 9월 정례브리핑에서 문제가 불거진 이후 대사관 측은 룰을 위반했다는 해당 기자와의 관계 회복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통상 특정 기사로 인해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면 가장 먼저 해당 기자와 접촉해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상식이다. 대사관 측은 이 같은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주중대사관 홈페이지에 ‘보도설명자료’를 게재하고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들의 변명을 늘어놓는데 급급했다.



무엇보다 룰 위반을 지적한 대사관측 역시 보도설명자료를 작성하는 룰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관례대로면 해당 기사를 게재한 매체명과 기사 제목, 게재일자만을 적시하지만 대사관은 해당 보도설명자료에 기자의 실명을 못박았다. 마치 ‘기자가 먼저 실명 보도 룰을 깼으니 우리도 똑같이 하겠다’는 태도로 읽혀졌다. 자료에서 ‘고의로 실명과 직책을 모두 게재하였음을 지적함’이라는 공격적인 표현을 적은 것도 일반적인 보도설명자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날 올라온 다른 보도설명자료에는 기자의 이름을 적지 않고 관례대로 적은 만큼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주중한국대사관의 차량이 16일 케이페스타 행사가 열리는 행사장 인근 횡단보도에 걸쳐 불법 주차돼 있다. 샤오홍슈 캡쳐


실명 보도 논란 이후 불편한 심기 탓인지 대사관측이 특파원단의 취재 활동 편의를 제한하는 일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16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케이페스타 행사가 대표적이다. 당시 행사를 공동 주최한 주중대사관은 이틀 전인 14일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하며 정 대사의 행사 참석을 알렸다. 당연히 특파원단은 현장 취재를 위해 정 대사의 현장 방문 시간을 문의했다. 수차례 요청에도 대사관측은 조율중이라는 이유를 들며 끝까지 정확한 시간을 알리지 않았다. 하다 못해 대통령의 일정도 행사 당일에는 기자단에게 엠바고를 전제로 알려주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 대사의 일정은 특급 비밀에 부쳐져 있다.

이번 외교통일위원회의 국감 취재 과정에서도 대사관측은 일방적으로 취재를 제한하려 했다. 올해 주중대사관 국감은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따라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화상으로 진행됐다. 당초 대사관에서는 이를 근거로 지난해와 동일한 취재 기준을 제시했다. 국감장 현장 취재는 방송 2명(취재 1, 촬영 1), 신문 1명 등 3명으로 구성해줄 것을 요청했다.

기자단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일본대사관에서 화상으로 진행돼 현장 취재가 없고, 휴일이라 국회방송에서 중계를 하지 않는 점, 지난해에 비해 중국과 베이징 내 방역 상황이 완화된 점을 이유로 들어 인원을 늘려줄 것을 요구했다. 구체적 근거가 있다면 취재 인원 제한을 수긍하겠지만 과도하게 현장 취재를 막으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파원단은 취재 인원 최종 결정 과정과 국감 취재 관련 별도의 방역 지침 유무를 물었다. 대사관에서는 “통상적인 내부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쳤다”, “베이징시의 구체적인 지침은 없었다”라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전해왔다. 방송 취재 인력을 1명 더 늘려주긴 했지만 대사관측에서는 필요할 때만 ‘코로나19’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고 있다. 매주 열리는 대사관 브리핑의 경우 더 많은 특파원들이 현장에 모여 취재를 한다. 대사관에서는 베이징 내 방역 조치가 강화됐을 당시 브리핑을 취소한 적은 있으나 그 외 시기에는 단 한번도 취재 인력 자체를 제한한 적이 없다. 국감 당일에만 코로나19 바이러스 활동이 증폭되는 것도 아닐텐데 방역을 이유로 인원을 통제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모든 것은 최고 책임자가 의사 결정을 한다고 봤을 때 누구의 생각이 반영됐을 지 명약관화하다.

국감 취재 과정에서도 대사관측은 방송 촬영 카메라는 되도록 이동을 자제하라거나 심지어 포토라인을 설정해 그 이상은 넘어오지 말라는 황당한 요구 사항을 내놨다. 대사의 현장 발언과 분위기를 전달하려는 신문 매체에게도 작년처럼 2시간 단위로 취재를 교대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인원을 제한하는 것도 모자라 취재 방식까지 컨트롤하려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이처럼 정 대사와 특파원단 사이에 특정 보도를 이유로 논란이 불거진 이후 관계는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남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의 허물이 무엇인지 돌아보라는 말이 있다. 김홍걸 의원 역시 정 대사의 해명을 듣고 “엉뚱하게 언론이 자막을 잘못 달아서 그렇게 됐다고 언론 탓을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변명과 비슷하다고 본다”며 “앞으로는 언론과의 소통, 교민과의 소통 강화를 열심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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