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경호처가 21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 범위를 300m로 확장했다. 극우 단체의 강성 시위를 사실상 금지하는 조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진표 국회의장의 건의를 즉각 수용한 것으로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협치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호처는 21일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의 경호 구역을 확장해 재지정했다”고 밝혔다.
경호처가 기존에 지정한 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의 경호 범위는 사저의 울타리까지였다. 이번 조치는 경호 범위를 울타리부터 최장 300m까지로 넓혔다. 이에 따라 문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스피커 등을 이용하던 시위는 앞으로 300m 바깥에서 해야 한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22일 0시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경호처의 이번 조치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회의장단과 만찬 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의장은 문 전 대통령 사저 주변의 시위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조치를 요구했다. 15일에는 시위자가 경호원과 함께 산책하던 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에게 모욕성 발언을 하며 협박하고 이튿날에는 비서실 직원에게 커터 칼을 꺼내 위협했다가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벌어지는 등 시위가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어서다. 이에 윤 대통령은 경호처에 경호 강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하며 여권을 향해 협치의 메시지를 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6월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의 시위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예방한 김 의장을 만난 후 사실상 사저 인근의 시위를 중단하는 조치를 했다.
현재 국회의 입법은 169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9월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기업 투자 감세 등 경제 살리기 법안과 내년도 예산안 등을 처리해야 국정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민주당과의 협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윤 대통령이 협치의 메시지를 낸 것이 정기국회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도 경호처의 발표에 대해 “늦었지만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경호처는 “집회·시위 소음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평산마을 주민들의 고통도 함께 고려했다”며 “평산마을에서의 집회·시위 과정에서 모의 권총, 커터 칼 등 안전 위해 요소가 등장하는 등 전직 대통령의 경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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