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썹 한올 한올에서 흰 꽃이 피어올랐다. 꽃이라도 심어 영원히 감기지 않을 눈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기괴하게 아름다운 큰 눈에서 굵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살바도르 달리가 1944년 발레 ‘광란의 트리스탄’ 무대 첫 장면을 위해 제작한 ‘꽃이 피어있는 눈(no.8)’이다. 달리는 이 공연의 무대 뿐만 아니라 의상 디자인에도 참여했고 원작 ‘트리스탄과 이졸데’ 앨범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들었다고 한다.
2차원 평면인 화면에 3차원 공간감을 만들고자 캔버스를 칼로 찢었던 루치오 폰타나는 여기에 시간을 부여한 4차원 공간을 모색했다. 말년작 ‘공간개념(극장)’은 구멍 난 캔버스와 액자, 빛과 그림자를 활용해 평면 작업이 무대처럼 보이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노골적으로 드러난 젖가슴이 풍요롭기는 커녕 비루한 생명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듯한 ‘고통받는 여인’은 제1차 세계대전의 부상으로 평생 트라우마와 우울증에 시달린 초현실주의 미술가 앙드레 마송의 청동 조각이다. 독특한 사진작업으로 유명한 만 레이의 작품 ‘선물’은 구리 못 14개가 바닥에 붙은 다리미다. 양복점을 운영한 아버지에게서 영감을 받아, 쓸모없는 듯하나 평범한 사물을 비범하게 만드는 ‘예술의 선물 같은 가치’를 상기시킨다.
이들 쟁쟁한 거장들의 작품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세화미술관의 첫 소장품 특별전 ‘미지의 걸작’을 통해서다. 망치질 하는 사람의 형상을 통해 노동의 숭고함을 보여준 조너선 브롭스키의 ‘해머링 맨’이 서 있는 흥국생명빌딩 3층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초현실주의부터 20세기 현대미술사를 관통하는 주요작가 17명의 30여점 대표작을 엄선했다.
가장 압도적인 작품은 폭이 12.3m 이상인 프랭크 스텔라의 ‘O 후작부인’이다. 스텔라는 1960년대만 해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했지만 1980년대 이후 유기적인 형태의 입체 부조회화를 제작했다. 현란한 색채와 끊임없이 이어지며 펼쳐지는 감각적인 형태가 한참을 바라보게 한다. 작품 앞에 벤치가 놓인 이유다. 전체를 조망한 후 가까이서 세부적 기교를 살펴본다면 즐길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인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추상표현주의에 거부감을 갖고, 그 대표작가 윌렘 드쿠닝의 그림을 싹 지워버린 후 자신의 서명만 남기는 ‘드 쿠닝 지우기’를 선보여 전통 회화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가 일상적 물건들을 예술적 재료와 섞어 제작한 ‘유령선의 귀환’은 국내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작품이다. 의도한 것인지, 공교롭게도 드쿠닝의 ‘무제’와 나란히 걸렸다. 형태를 해체한 후 그 추상성을 자유롭게 구현하는 것으로 탁월한 작가다.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짐 다인의 조각 설치작품 ‘2명의 도둑과 1명의 거짓말쟁이’ 등 해외 미술관에 가거나 블록버스터 기획전을 통해서라야 관람할 수 있는 작품들을 대거 만날 수 있다.
태광그룹 산하 세화예술문화재단은 기존의 ‘일주&선화 갤러리’를 2017년 세화미술관으로 확장해 개관했다. 재단이 지난 2010년부터 지속해 온 국내 신진작가 지원 사업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이번 전시는 재단이 그간 공들여 모은 소장품을 ‘열린 미술관’의 지향에 맞게 대중에 공개해 함께 향유하게 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1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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