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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과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탈진실 시대…'내러티브'의 힘을 갖춘 팩트체커를 요구한다

■ 노르웨이 오슬로 '글로벌팩트9' 현장 르포

유튜브·트위터·페이스북 등 디지털 플랫폼 발달

가짜뉴스, 음모론도 빠르게 확산…민주주의 위협

전세계 글로벌 팩트체커 한 자리 모여 노하우 공유

맥킨도 "새는 진짜가 아냐" 풍자적 운동으로 음모론 비판

퓰리처 상 수상자 애플바움 "맥락과 분리된 사실 의미 없어"

내년 10주년 행사, SNU팩트체크센터 공동주최 서울서 열려

피터 맥킨토가 ‘새는 진짜가 아니다’가 쓰여진 차량 위에서 확성기를 들고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글로벌팩트9' 행사 소개 영상




“새는 진짜가 아닙니다.(Birds Aren’t Real)”

금발의 곱슬 더벅머리를 한 젊은 사내가 다리를 꼬고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미국 정보당국이 수십 년 전에 새들을 모두 없앴고,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새는 진짜가 아니란다. 미 정보당국이 시민들의 삶을 염탐하기 위해 CCTV를 탑재해 만든 복제 드론이라는 것이다. 새들이 전신주의 전기 줄에 앉아 있는 것은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상하다. 얼토당토않은 소리 같지만 계속 듣고 있으니 묘하게 빨려 들어간다. ‘새가 진짜가 아님’을 증명할 목적으로 그가 제작한 전직 CIA 요원과의 인터뷰 영상은 틱톡(TikTok)에서 20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현재 미국에서 공연 예술가 겸 영화 제작자로 활동 중인 이 괴짜 청년의 이름은 피터 맥킨도(Peter McIndoe)다.

피터 맥킨도(오른쪽)가 오슬로 메트로폴리탄대학 강당에서 진행된 ‘글로벌팩트9’ 대담에서 청중석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서민우기자


맥킨도는 지난달 22~25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 중심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대학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팩트체크 서밋인 ‘글로벌팩트9’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아직 국내에선 그의 이름이 낯설지만 미국에서는 2017년부터 ‘새는 진짜가 아니다’는 풍자적 사회운동을 주도하며 꽤 유명한 인사가 됐다. ‘가짜 음모론’으로 ‘진짜 음모론’을 비틀어 공격하는 그의 풍자 방식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다. 전 세계 팩트체커들이 모여 허위 정보에 대응하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인 ‘글로벌팩트9’에 그가 메인 연사로 초청된 것은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탈진실(post-truth)’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016년 옥스퍼드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대중의 의견을 형성하는데 더 큰 영향을 발휘하는 환경이나 현상을 뜻한다. 대개 사람들은 태어난 지역과 성장 과정에서의 교육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성인이 돼서도 특정 사안을 판단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유년 시절에 형성된 신념 또는 감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맥킨도는 “나는 매우 보수적인 종교 공동체 마을인 미국 남부의 아칸소에서 홈스쿨링을 하며 자랐다”면서 “그곳에서 지구의 나이는 5000년이라고 배웠고,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밋 롬니와 겨룰 때 그가 적그리스도라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눴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당시 주변 동네의 어른들이 이것을 믿고 아이들을 가르쳤다”며 “그곳에선 모두가 음모론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새는 진짜가 아니다’는 풍자적 음모론을 통해 큐어넌과 같은 ‘진짜’ 음모론에 맞서 싸우고 있는 피터 맥킨도


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틱톡 등 콘텐츠를 쉽게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는 현대 미디어 환경에선 탈진실 현상이 더욱 짙어질수 있다.맥킨도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 사람들은 그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는데 2분도 쓰지 않는다”며 “2초 정도 찾아보고 다시 자신이 믿는 쪽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거짓 정보를 걸러내고,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미디어와 팩트체커들의 역할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맥킨도가 ‘새는 진짜가 아니다’는 가짜 음모론을 들고 나온 배경엔 거짓 정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퍼뜨리며 정치 세력화한 ‘큐어넌(QAnon)’이 있다. QAnon은 2017년 미국에서 처음 조직된 극우 음모론 단체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미국 민주당 핵심 인사들이 비밀리에 아동 성착취 등을 저지르고 있으며 이를 해결할 유일한 인물이 트럼프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큐어넌의 로고.


QAnon은 2020년 코로나19 초기에 ‘마스크 착용은 효과가 없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백신을 팔기 위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등과 같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비슷한 신념과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 사이에서 진실로 둔갑하고,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져 민주주의를 위협했다. 지난해 1월6일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미 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의회 난입 주도자 가운데 QAnon 회원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맥킨도는 멀쩡한 사람들이 QAnon을 믿고 따르는 것을 풍자하기 위해 ‘새는 진짜가 아니다'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페데믹 여파로 3년 만에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대학에서 개최된 ‘글로벌팩트9.' 이번 행사에는 69개국 500여 명의 팩트체커들이 참여했다. /사진-글로벌팩트9


이번 ‘글로벌팩트9’에서는 69개국 500여 명의 글로벌 팩트체커들이 참여해 탈진실 시대 속에서 어떻게 거짓 정보들과 싸워왔는지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학계와 언론계 인사들도 참여했지만, 상당수가 팩트체크를 위한 비영리 조직과 단체에 소속된 점이 눈에 띄었다. 정은령 SNU 팩트체크 센터장은 “주류 미디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가일수록 권력 기관이나 특정 정치 세력의 입맛에 따라 거짓 정보가 횡행하기 쉽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비영리 조직이나 단체가 중심이 돼 팩트체크를 수행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각 나라마다 언론 환경이 달라 팩트체크 역할을 주도하는 곳은 다르다”며 “국내의 경우엔 평소 취재 현장에서 팩트체크 훈련을 받은 언론인들의 역할 확대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이번 행사에서는 진정한 팩트체크를 위해선 단순히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사건의 맥락을 확인하고 서사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구슬이 서 말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일반 시민들이나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팩트체커들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당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진행과정을 심층취재하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로 엮어내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언론인들이 비영리 조직이나 단체에 소속돼 활동하는 팩트체커들과 비교해 우위에 설 수 있는 지점이다.



글렌 케슬러(오른쪽 세번째) 워싱턴포스트 선임기자가 팩트체크에서 내러티브의 힘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민우기자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에서 팩트체킹 전문칼럼인 ‘팩트체커(The Fact Checker)' 코너를 맡고 있는 글렌 케슬러(Glenn Kessler) 선임기자는 “지난해 1월 6일 발생한 트럼프 전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건과 관련해 올해 ‘1월 6일 테러에 대한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정말 긴 분량의 기사를 작성했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보도는 사실 확인만으로는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알려진 사건이지만 1월 6일 의회 난입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사건 발생 이후 정치권력들은 해당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서사 형식으로 풀어냈다”고더강조했다.



케슬러 선임기자는 “우리가 한 사람의 연설에 대해 내용이 사실인지 100번 체크하는 것보다 지지자들이 왜 트럼프를 지지하고, 의회에 난입했는지 맥락을 분석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면서 “올해 초에 진행한 작업도 이 부분에 집중했다. 예컨대 폭동에 가담한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 FBI 비밀 요원으로 알려진 인물에 대해 그 사람이 실제 요원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왜 이 사람이 그런 음모론에 휘말리게 됐는지 배경을 파고들었다”고 설명했다.

앤 애플바움(오른쪽)이 노르웨이 오슬로 메트로폴리탄대학 강당에서 진행된 ‘글로벌팩트9’ 에서 사회자와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서민우기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앤 애플바움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로 들며 단순한 사실 확인만으로는 점점 정교해지고 다양화하는 허위 정보를 막아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가 현재 눈으로 확인하는 물리적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 정부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통제되고 조직된 허위 정보들이 준비돼 왔다”면서 “이런 허위 정보를 걸러내는데 단순한 사실 확인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팩트체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위험 중 하나가 강력한 내러티브의 힘을 놓치는 것”이라면서 “사실이든 거짓이든 맥락과 분리된 사실은 거의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행사에서 눈에 띈 또 다른 대목은 구글·메타(페이스북)·틱톡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팩트체커들의 활동에 대해 ‘지원은 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 점이다. 이들 기업은 ‘글로벌팩트9’ 행사의 메인 스폰서로도 참여했다. 전세계 주요 팩트체크 단체들은 검증의 주요 대상이 정치권력이나 정부 기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공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을 꺼려한다. 그렇다고 팩트체커들이 후원을 해주는 기업을 검증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행사에서도 팩트체커들은 플랫폼 기업들의 고위 임원들이 대담을 하기 위해 나온 자리에서 “허위정보의 유통에 대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며 질타를 했다.

‘글로벌팩트9' 행사를 후원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 /사진=서민우기자


한편 내년에 10주년을 맞는 글로벌 팩트체킹 서밋(‘글로벌 팩트 10’)은 아시아권 최로로 한국에서 열린다. 6월 28~30일 사흘간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서울대 SNU팩트체크센터와 IFCN이 공동주최한다.

내년에 10주년을 맞는 ‘글로벌팩트10’ 행사는 서울에서 열린다. /사진제공=SNU팩트체크센터


/노르웨이 오슬로=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이 취재는 서울대학교 SNU팩트체크센터-한국언론학회-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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