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설비투자가 급속히 줄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시설 투자, 유형자산 취득을 공시한 기업과 투자 금액이 54곳, 3조 7846억 원에 그쳤다. 기업들의 설비투자 금액은 지난해 1분기 7조 9499억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에너지·원자재 가격 폭등과 금리 급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설비투자 계획을 미루거나 아예 접은 사례가 속출한 것이다. 글로벌 기관들은 잇따라 한국의 경제성장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6일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3.1%에서 3.0%로 하향 조정했다. 대신 물가 상승률을 1.9%에서 3.2%로 대폭 올렸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와 무디스는 이미 지난달 올 성장률 전망치를 0.3%포인트 하향한 2.7%로 제시했다.
지난달 사상 최대 수출액 기록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저성장 우려’가 나라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소비자가 물가 폭등으로 수요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축소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악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이미 지난달에 4.1% 올라 10년 3개월 만에 4%선을 돌파했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가 세계 1위이고 기업 부채는 국제통화기금(IMF) 당시의 위기 수준을 넘어섰다.
얼어붙는 기업의 투자 심리를 녹이고 투자 의욕을 북돋워줄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 돼야 투자와 고용이 늘면서 성장 잠재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새 정부는 과감한 규제 혁파와 노동 개혁의 밑그림을 그리고 실행을 서둘러야 한다. 설비투자용 대출에 저금리 혜택을 부여하는 등 금융·세제·연구개발 지원을 위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유세 당시 “대통령이 되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기업인을 업고 다니겠다”고 강조했다. 또 “해외로 나간 공장을 국내로 다시 들여오면 규제를 풀어주고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했다. 윤 당선인이 대선 때 약속을 당장 실천해야 투자와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