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1일, 서울경제는 금융 산업의 ‘선진화’를 기원하며 ‘리빌딩 파이낸스’라는 연재물을 내보냈다. 본지는 금융 산업 발전을 위한 블루프린트를 만들 것을 주문하며 화두로 ‘금융의 정치화 차단’을 제시했다.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은 기획에 맞춰 진행한 인터뷰에서 국내 시장에 치우친 은행들의 쌍둥이 영업 패턴을 꼬집으며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적 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 산업 육성은 단골 테마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시한 동북아 금융 허브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교육·노동 등의 개혁이 동반됐다면 지향해볼 만한 목표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며 금융 당국의 수장 교체 때마다 중장기 비전을 발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본지의 금융 전략 포럼에서 밝힌 ‘창조 금융’은 공허한 구호라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금융과 제조업 간 생산적 사슬을 꿈꿨다는 점에서 수긍할 부분이 많았다. 우리 금융 산업이 ‘우간다 수준’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키워보려는 고민을 계속해온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하다 못해 참담했다. 10년간 제조업에서 세계 1위 기업과 제품이 줄줄이 등장하는 동안 금융권에서는 아시아에서도 경쟁력을 지닌 곳을 만들지 못했다. 금융은 제조업과 글로벌 무대의 여건과 풍토가 달라 삼성전자 같은 곳을 기대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리가 있지만 넓게 보면 비겁한 변명이다. 해외 이익 비중을 유력 대기업처럼 70~80%까지는 안 돼도 절반, 아니 4분의 1만큼 만들 방법은 있었다. 이 길을 저버리고 금융 산업을 망친 것은 금융인 스스로였고, 그들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관료와 권력의 실세들이었다. 이들은 악어와 악어새가 돼 금융회사의 단물을 취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은 비극의 단초였다. 혈세를 무기로 관료들은 간섭과 규제가 심해졌고 인사권을 휘둘렀다. 뱅커들은 저항은커녕 갈수록 길들여졌다. 인사철만 되면 청와대·금융 당국 등에 합병 은행들의 투서가 난무했다. 주인이 없는 곳에서 능력주의는 사라지고 파벌과 음모가 판을 쳤다. 한 전직 금융회사 수장은 최고경영자(CEO) 선출을 앞두고 여성 지점장과의 불륜 루머에 고성을 지르며 분노했지만 ‘아니면 말고’식 사생활 공격에 재미를 본 상대방의 공작은 계속됐다.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부금회(부산 출신 금융인 모임)’를 욕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음습한 인맥의 줄기를 만들었다. 금융인의 일그러진 행태를 노린 것이 ‘4대 천황’이었다. 이런 구태를 제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리빌딩’을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나마 과거 정권은 금융을 독립된 ‘산업’의 개념으로 키우려는 노력이라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마저 중단됐다. 취임 첫해 ‘금융 홀대’라는 말이 나오더니 정권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발전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금융을 먹잇감으로 이용하는 방식은 더 교묘해졌다. 경험이 일천한 청와대 출신 행정관이 민간 은행들이 구조 조정을 위해 만든 유암코 감사도 모자라 한국판 뉴딜 운영 회사의 책임자가 되겠다고 나선 것은 금융에 대한 현 정권의 몰염치를 보여준다. 참여 정부 장차관들이 현 정부 시작과 함께 금융협회장직을 꿰차는 순간 금융의 발전을 포기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정권 실세는 물론 주변인까지 임기 내내 낙하산 탈 곳을 기웃거렸다. 이들은 티 나지 않지만 알토란 같은 자리를 찾아 정권 막판까지 ‘낙하산 알박기’를 시도할 것이다.
지난달 말 전·현직 금융인 1,000여 명이 유력 대권 주자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대선 때면 나타나는 구토 나는 풍광이다. 선거가 임박할수록 캠프에 줄을 대고 후보와 사진 한 장이라도 찍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것이다. 차기 정권 내내 실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자리를 차지하려 아귀다툼을 벌일 예비 군단이다. 이런 몰골을 보며 금융의 경쟁력을 계속 얘기해야 한다니 우울함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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