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그래왔듯 언제나 작곡가가 먼저 떠오르게 하는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 3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막을 내린 제63회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박재홍(사진)이 겸손의 소감을 전했다.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1위를 차지한 것은 2015년 문지영 이후 두 번째다. 영광의 자리에 오른 박재홍은 콩쿠르 직후 서울경제와의 전화 통화에서 “결선에서 오케스트라와의 교감도 좋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표현했다는 생각에 여한이 없었다”며 “1위라는 결과까지 얻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덤덤하게 소감을 밝혔지만 22세 젊은 연주자에게는 바로 몇 시간 전 벌어진 일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아직도 결선의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며 “사실 지금 정상적인 사고가 안 된다. 내일 아침이 돼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지금의 얼떨떨함을 전했다. 박재홍은 1위와 함께 부소니 작품 최고 연주상, 실내악 최고 연주상, 알리체 타르타로티 특별상, 키보드 커리어 개발 특별상 등 4개 부문의 특별상을 받았다.
올해로 63회를 맞은 부소니 콩쿠르는 이탈리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페루초 부소니(1866~1924년)를 기리기 위해 1949년 시작됐다. 2001년까지 매년 콩쿠르를 개최해오다 2002년부터는 짝수 해에는 예선을, 홀수 해에는 본선을 진행하는 격년제로 열리고 있다. 그동안 알프레트 브렌델, 마르타 아르헤리치, 개릭 올슨 등 거장을 배출했으며 한국인 중에서는 1969년 백건우가 본상이 아닌 격려상에 해당하는 메달을 받은 뒤 서혜경(1980년)과 이윤수(1997년)가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으며 이후 손민수(1999년·3위), 조혜정(2001년·2위), 임동민(2001년·3위), 김혜진(2005년·3위), 문지영(2015년·1위), 원재연(2017년·2위) 등이 이름을 올렸다. 박재홍은 이 콩쿠르가 배출한 연주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거쳐 간 곳에서 내가 그 계보를 이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뿌듯해했다.
이번 대회에는 총 506명이 참가했으며 93명이 온라인 예선을 거쳐 총 33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지난달 24일부터 본선이 치러졌으며 이 중 3명이 최종 결선에 올라 순위를 가렸다. 코로나19 속에 진행된 콩쿠르였지만 박재홍에게 크게 힘든 점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5일 격리한 것 외에는 콩쿠르 참가자가 하는 것이 연습하고, 자고, 또 연습하는 것뿐이었다”며 “코로나19 상황이라고 해서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선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진행됐는데 박재홍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선택했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4개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장대하고 어려운 곡으로 유명하다. 박재홍은 “이 곡에는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다 들어 있고 깊이도 있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협주곡”이라며 “작곡가에 대한 나의 경외심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늘 “작곡가가 먼저 보였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건반과 마주한다는 박재홍은 “이 마음가짐이 이어질 수 있도록 늘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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