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괴물’은 제가 감독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 시작점 같은 작품이에요. 데뷔작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완벽하진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보충했죠. 지금 이 기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괴물이 날 살렸다!’”
최근 종영한 JTBC ‘괴물’의 심나연 PD는 두 번째 연출작인 이 드라마가 본인에게 갖는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괴물’은 형사물, 심리 스릴러 등 이른바 ‘장르물’의 형식을 잘 따르면서도 부동산 등 현실적 문제를 놓치지 않은 연출로 호평 받았다. 신하균·여진구 등 배우들의 호연도 더해져 적잖은 마니아 시청자를 거느린 이 드라마는 다음 달 열리는 제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7개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장르물 첫 도전작에서 탄탄하고 안정적 연출력을 보여 준 여성 감독을 향한 관심도 자연 높아졌다. 이에 대해 심 PD는 “선배님들이 잘 닦아온 길이 있어서 여성 감독의 활동은 지금도 활발하고,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라면서도 “남녀를 떠나 주목할 만한 젊은 감독이 많아졌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괴물’은 만양이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20년 전 발생한 살인사건과 동일한 범행이 발생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20년전 실종된 쌍둥이 동생의 살인범이란 누명을 쓴 후 경찰이 된 동식(신하균 분), 연쇄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원해 온 주원(여진구 분)은 사건을 추적하다 종종 괴물의 면모를 보이며 인간의 선악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는 최근의 작품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연출 방식으로 눈길을 끌었다. 최근의 복수극들이 자력구제를 통한 ‘사적 복수’로 흘러가는 것과 달리, ‘괴물’의 주인공들은 법이란 공적 테두리 안에서 복수를 마무리한다. 심 PD는 “보는 이에게 교훈을 남기는 것이 드라마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작가의 설명을 듣고 ‘이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전하고픈 메시지가 분명했기에 이 결말이 맞다고 봤다”고 전했다.
또 살인, 실종사건을 소재로 한 드라마이면서도 살인자에 집중하거나 극 전개를 빨리 해 자극성을 높이는 대신 느리지만 탄탄한 심리 추적에 집중했다. 동식을 비롯해 실종된 어머니를 찾을 때까지 정육점을 지키는 유재이(최성은 분) 등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는 극도의 클로즈업으로 배우의 얼굴을 프레임 가득 채우는 ‘타이트샷’을 적극 활용했다. 1회 엔딩에서 신하균이 대사 없이 짓는 표정을 보고 심 PD는 내심 ‘살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장르물 첫 도전에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단서의 효과적 회수’였다. ‘비밀의 숲’, ‘시그널’ 등 성공한 장르물들을 돌려보며 인기의 비결을 궁리하기도 했다. 심 PD는 “(이 작품들에서) 스릴러적 요소뿐 아니라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부분을 시청자들이 좋아했던 것 같다”며 그런 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괴물’을 통해 감독으로서 자신감을 얻은 그이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모든 제작진, 배우들의 합이 좋았고, 덕분에 제가 목표로 한 수준을 유지한 채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다만 대중성이 부족했던 것 같은데, 차기작에선 시청자들이 좀더 쉽게 다가오고 많이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네요.” 심 PD의 세 번째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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