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맏아들과 그 밑으로 딸 셋을 둔 다둥이 아빠다. 딸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딸바보’가 됐다. ‘딸바보’ 아빠로 살면서 무척 행복하지만 한편으론 가슴 쓸어내릴 일도 많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뉴스라도 보면 전전긍긍하며 원인과 대책에 관해 분석하게 되고, 때론 딸들에게 조심스럽게 안전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호신술이라도 배우게 해야 하나 싶었던 적도 있다.
걱정이 이것뿐이랴. 결혼과 출산·양육 문제 때문에 직업 활동과 자기 실현을 위한 사회적 활동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 부모로서 어떤 조언을 해야 할지 몰라 아내와 함께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마음이 무겁다.
‘딸바보 아빠’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여전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만연해 있다. 양성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존립과 직결되는 매우 중차대한 사안이다. 차별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국가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이 커지면 이는 정부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사회를 와해시키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양성평등 정책을 펼치고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차별이라는 본질을 해소하지 못한 채 차별 대상 지원에만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는 양성평등 지수 상승, 성 인지 예산 증액, 여성할당제 달성 등 ‘수치’에만 매몰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오히려 예산 낭비와 역차별, 혐오 논란 등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번진 측면이 없지 않다. 차별 문제에는 역사적·정치적·문화적 영향이 다양하게 얽힌 만큼 관계 부처 및 여야가 국가 공통의 목표와 대안을 설정한 후 긴 호흡으로 이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부처 간 칸막이는 여전하고, 관계 부처마다 제 소관이 아니라며 핑퐁 게임을 일삼는다. 사람 없고 돈 없어 힘 없는 여성가족부는 청와대 눈치나 보며 할 말조차 하지 못한다. 나아가 권력자의 성범죄로 인한 재보궐선거에서 피해 여성에 대한 속죄는커녕 오직 선거의 승리를 위해 2차, 3차 가해를 서슴없이 저지르면서도 양성평등을 외치는 아이러니한 행보를 이어가기도 했다. 표를 위해 차별 해소 문제를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권에 몸담은 필자 또한 그런 오류에 대한 공동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히든 피겨스’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 세 명의 주인공처럼 용기 있는 여성들이 있었기에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여성에게만 용기를 내라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다. 그들을 둘러싼 사회 권력과 정치·행정 권력이 함께 선도적으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변화할 용기가 없다면 결국 제자리일 뿐이다.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고,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딸들아! 함께 반란을 꿈꾸자!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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