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오래 같이 살아서 생애를 이루는 것인데, 힘들 때도 꾸역꾸역 살아내려면 사랑보다도 연민이 더 소중한 동력이 된다. 불같은 사랑, 마그마 같은 열정은 오래 못 간다. (…) 사랑이 식은 자리를 연민으로 메우면, 긴 앞날을 살아갈 수 있다. 오래 연애하다가 결혼한 부부가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연애를 오래 했으면 서로 성격을 잘 알 터인데,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은, 이른바 사랑이 사그라진 자리에 연민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은 단거리이고 연민은 장거리이다. 빚쟁이처럼 사랑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말고 서로를 가엾이 여기면서 살아라. (김훈, ‘연필로 쓰기’, 2019년 문학동네 펴냄)
해마다 명절 직후에는 이혼이 급증한다. 친지들이 한집에 모이기 힘든 올 설에는 좀 나을까. 그러나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 귀성하느냐 마느냐를 두고도 집집마다 부부싸움이 속출한다니, ‘명절 이혼’이 그리 획기적으로 줄어들 거라고 기대하기는 힘들겠다. 소설가 김훈은 책에서 주례사 실패의 경험담을 말했다. 그는 주례를 설 때마다 집밥의 소중함을 말하고, 생활을 지탱하는 돈 벌어오는 일의 지엄함을 말하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형식과 예의를 지키는 일에 대해 말했다. 젊은 하객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그는 결국 결혼이라는 장거리 레이스에서 반드시 지녀야 할 한 가지를 ‘비장의 무기’로 꺼내본다. 그것은 바로 ‘연민’이다. 이 고단한 ‘인생’ 레이스에서 곁에 있는 사람의 가엾음을 알아보고 알아주는 일이다.
올 명절에는 부모님을 뵈러 내려가는 것도 딱한 일이고, 내려가지 못하는 것도 딱한 일이다. 가엾은 우리, 가까스로 삶을 견뎌내고 있는 서로의 가엾음을 알아봐주는 명절이기를 바란다. 코로나 핑계로 안 내려간다고 닦달하지 말고, 거창한 덕담과 새해 소망으로 현재를 쓸쓸하게 만들지도 말고, 그냥 건강히 살아내는 것, 현 상태를 유지하고 견디는 것만으로도 기특해하고 대견해하면서.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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