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미국 재계에서는 억만장자의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컨의 행보에 시선이 쏠렸다. 그해 초부터 세계 두 번째 렌터카 업체인 허츠의 주식을 사들이던 아이컨은 8월20일 8.48%의 지분 매입 소식을 알렸다. 허츠가 두 달 전 2011년 재무제표의 회계 오류를 밝히자 그 틈을 활용해 공격에 나선 것이다. 아이컨은 허츠 최고경영자(CEO)까지 내몰며 압박했고 지분을 계속 늘려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미국의 대표 기업조차 기업 사냥꾼의 올가미에 꼼짝없이 걸려든 것이다.
허츠는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여러 번의 인수합병(M&A)을 거치며 부침을 거듭했다. 1918년 일리노이의 월터 제이콥스가 설립할 당시 12대이던 렌트 차량은 5년 만에 600대로 늘었다. 시카고에서 운수업을 하던 존 허츠는 1923년 이를 인수한 뒤 ‘허츠드라이브유어셀프시스템’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3년 만에 다시 GM에 넘어간 허츠는 대여 영업소 외 지점에도 반납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혁신을 이어간다.
미련이 남은 존 허츠는 1953년 GM으로부터 다시 회사를 넘겨받아 ‘허츠 코퍼레이션’으로 개명한 뒤 뉴욕 증시 상장과 대형 트럭 임대업체 인수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두 차례 손바뀜이 더 이뤄진 허츠는 1987년 포드에 넘어간 뒤 성장 속도가 더 빨라졌다. 2005년 포드가 차 제작에 집중하려 한 사모펀드에 매각할 당시 허츠는 포드 이익의 10%를 차지할 만큼 커졌다. 이후에도 영국 중고차 딜러 BCA와 미국 4위 렌터카 업체 달러트리프티를 연이어 사들이며 보유 차량만 57만 대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허츠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우버 등 차량 공유 기업의 성장으로 적자를 보던 와중에 코로나19까지 겹치자 관광객이 줄고 재택근무가 늘며 파산 위기에 몰렸다. 칼 아이컨의 도움으로 생명을 일단 연장했지만 22일까지 특단책이 없으면 파산보호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 허츠가 넘어지면 완성차 업체도 렌터카 업체 등에 대량으로 파는 ‘플릿 판매’의 차질로 타격을 입게 된다. 코로나19가 아이컨마저 무릎을 꿇게 할 만큼 위력을 발휘할지 두고 볼 일이다.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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