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지난 5일 국회에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심사가 한창입니다. 추경은 말 그대로 정부가 한해 얼마를 쓰겠다고 정한 ‘본예산’ 외에 국가재정법상 예상치 못한 대규모 재해나 경기침체 우려가 있을 경우 한 번 더 편성하는 예산입니다. 국회는 지난해 말 올해(2020년) 본예산으로 512조3,000억원을 확정했는데, 정부는 최근 11조7,000억원 규모로 추경을 하겠다며 국회에 그 안(案)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이 추경 규모를 놓고 시끄럽습니다. 여야도 아닌 정부·여당 사이에서 이견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여당은 코로나발(發)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추경 11조7,000억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입니다. “코로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국가 재난”(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이라면서 6억3,000억~6억7,000억원 증액을 주장합니다. 역대 추경 편성에서 감액은 있었어도 증액 사례는 한 번도 없습니다. 여당 주장대로라면 ‘코로나 추경’은 최대 18조4,000억원까지 늘어납니다.
반면 기재부는 추경 증액에 난색을 표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 방어를 위해서 추경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 규모는 나라 곳간 사정을 봐가며 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추경 11조7,000억원의 대부분인 10조3,000억원을 빚을 내(적자국채 발행) 조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미 당초 올해 39.8%로 예상했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추경에 따른 적자국채 발행으로 41.2%까지 악화하는 것을 감내하겠다고 한 상황입니다. 대표적인 재정 건전성 지표인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도 3.5%에서 4.1%로 커집니다. 여당 주문대로 빚을 더 내면 건전성이 더 악화할 수 있으니 규모를 제한하려는 겁니다.
급기야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추경 증액에 소극적이라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물러나게 할 수도 있다며 압박했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여당 대표가 경제부총리 해임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증액을 압박한 것은 드문 일입니다.
사실 코로나로 피해 입은 업종 지원을 위한 재정의 역할은 일정 부분 불가피합니다. 매출이 고꾸라져 당장 하루를 더 버티기도 힘든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절실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재정 건전성 훼손을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홍 부총리가 “추경 재원 대부분이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돼 일시적으로 재정적자가 늘어나지만 경제 비상시국을 돌파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추경 규모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을 수는 있지만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는 재정당국 수장인 경제부총리를 향해 해임 언급까지 한 것은 누가 봐도 과합니다. 건전성 방어야 말로 재정당국의 역할이자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홍 부총리가 여당의 증액 요구에 순순히 응한다면, 그게 오히려 해임감입니다.
하지만 웬일일까요. 그간 ‘존재감이 없다’ ‘예스맨’ 평가를 들어온 홍 부총리는 이 대표의 ‘물러나게 할 수도’ 언급이 알려진 그날 밤 10시 넘어서 페이스북에 나름의 소신을 밝혔습니다. 홍 부총리는 페이스북 글에서 “추경 규모는 재정 뒷받침 여력 등을 종합 고려해 결정 후 국회에 제출된 것”이라고 맞받았습니다. 거취 문제를 거론한 이 대표를 향해서도 “위기를 버티고 이겨내 다시 일어서게 하려고 사투 중인데 갑자기 거취 논란이...(불거졌다)”라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혹여나 자리에 연연해 하는 사람으로 비쳐질까 걱정”이라고도 했습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죠.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홍 부총리가 작정을 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기재부 노조는 13일 오후 ‘홍남기 부총리를 지지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당장의 경제위기 뿐 아니라 그 이후의 후폭풍까지 고려하는 것이 기재부이고 관료의 참 모습”이라며 홍 부총리 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홍 부총리 등 경제수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전례없는 대책을 만들라”고 한 점을 생각하면, 홍 부총리의 소신은 결국 부질없는 행동이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홍 부총리가 직(職)을 걸고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는 소신 행보가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될 지 지켜볼 일입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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