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끈을 욕실에 넣어두고, 언제든지 죽을 때는 망설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새 원내지도부를 선출하는 9일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김재원 의원은 정책위 의장 후보 정견 발표에서 “2년 전 이맘 때”라며 당시 상황을 담당하게 설명했다. 이는 그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가정보원 자금을 총선 여론 조사에 쓴 혐의로 ‘적폐 수사’ 대상에 올랐을 시기였다. 재판에 넘겨져 1·2심 재판부가 모두 김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그에게는 쓰린 상처였다.
김 의원은 “제 딸이 수능 시험을 치르는 날, 전 서울중앙지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다”며 “수없이 이어지는 수사와 재판, 영혼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그냥 혼절 상태에 이르렀다”고 회고했다. 특히 우연히 식당에서 본 ‘내가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데 누가 내 편이 돼줄까’라는 낙서를 소개하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그때 너무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던 거다. 제가 제 편이 돼주지 않으니 아무도 제 편이 돼주지 않았다”는 말로 현 상황을 빗대어 표현해서다.
이날 의총장에 참석한 의원은 107명으로 이 가운데 60명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사건으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려진 이들이었다. 전임 원내대표인 나경원 의원도 이 말을 들을 때 눈 주위가 붉어졌다. 그의 솔직 담백한 회상과 현 당 상황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 의총에 참석한 의원들의 마음을 흔드는 순간이었다.
김 의원은 “요즘 우리 당 쇄신, 혁신 말한다. 우리가 반성한다면서 우리에게 회초리를 든다”며 “그런데 우리가 우리 편을 들지 않고 회초리를 드니까, 국민들은 우리 스스로 서로에게 매질하는 거로 본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의 말 한마디는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동료 의원들의 심금을 울렸고, 이는 심재철 원내대표·김재원 정책위 의장 ‘당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게 당내 평가다. ‘심·금(沈·金)조’는 1차(39표)에 이어 결선에서도 52표를 받아 1위를 기록했다. 본래 원내대표·정책위 의장 경선에서 3~4파전 이상 후보군이 난립할 때 ‘현장 표심이 당선자를 정한다’는 암묵적 룰을 김 의원이 정견 발표에서 입증한 셈이었다. 다만 김 의원이 공개 정견 발표 중에 극단적 선택을 언급한 일을 두고 적절했는지 일각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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