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동물용 구충제 ‘펜벤다졸’ 약품의 품절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구매자들은 동물의약품지정약국뿐 아니라 동물병원까지 찾아 나섰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알에 1,000원 안팎인 약을 수십 배의 폭리를 받고 파는 이들까지 생겼습니다. 펜벤다졸 품절 현상으로 구입이 어려워지자 펜벤다졸 성분이 포함된 다른 동물의약품을 사거나 지인의 도움을 얻어 해외직구로 샀다는 환자도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시작은 지난 9월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60대 초반 조 티펜스(Joe Tippens) 씨가 올린 영상에서 부터였습니다. 그가 펜벤다졸이라는 성분이 함유된 강아지 구충제를 3개월 동안 복용한 후 말기 암을 완치했다는 것이 영상의 내용인데요. 해당 동영상은 업로드 3주 만에 187만여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 뿐 아니라 국내의 말기 암 환자들이 조 티펜스의 펜벤다졸 치료법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펜벤다졸이 ‘40년동안 사용돼 안전한 약제’라거나 ‘체내 흡수율이 20%정도로 낮아서 안전하다’ 등의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퍼지면서 유행처럼 번지진 것이죠. 몇몇 환자들은 스스로 임상 실험을 한다며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이러한 경험 일지를 암 환자 커뮤니티 사이트나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펜벤다졸은 원래 생체 내에서 사는 기생충으로 가는 영양분을 막는 화학성분입니다. 이런 특성이 사람 몸 속에서 암세포로 가는 영양분도 막아 암세포를 없애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확산 되고 있는 건데요.
이에 국내 보건당국이 발 빠른 대처에 나서긴 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펜벤다졸을 복용하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인데요. 40년동안 사용됐다고 하더라도 동물에게 사용된 것이지 사람에 대한 안전성은 보장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흡수율이 낮은 항암제는 효과도 적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고용량을 복용할 경우 용량 증가에 따라 독성도 증가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구충 효과를 나타내는 낮은 용량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나 항암효과를 위해서는 고용량, 장기간 투여해야 하므로 혈액과 신경, 간 등에 심각한 손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보건당국과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말기 암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겟단 심정으로 펜벤다졸을 찾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저렴한 가격의 약물로 암 치료를 막기 위해 일부 보건의료집단과 제약사들이 펜벤다졸 연구결과를 은폐하고 있는 것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뜯어말리는 상황에서도 일부 암 말기 환자들이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데에는 보건 당국에 대한 국민의 강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암 환자에 대한 정부정책이 근본적으로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실제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건주 숨사랑모임 운영위원은 “수천억 이상 예산이 들어가는 CT, MRI, 추나요법 등 혜택은 빠르게 급여화된 반면 폐암환자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은 면역항암제 급여화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협상만 진행하고 있다”면서 “식약처에서는 먹지 말라고 공식 발표했다지만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달리 싸게 구할 수 있는 펜벤다졸은 길게는 1년 짧게는 1달 선고를 받은 환자에게는 신이 내린 약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환자들의 절박한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쉽사리 복용을 권할 수는 없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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