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소녀인 누나 다빈(최명빈 분)이가 7살 남동생을 죽였다’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어린 의뢰인’은 믿기 힘든 충격적인 자백에서 핵심 이야기가 시작한다. 다빈이 남매를 아동복지센터에서 만나 알고 있던 변호사 정엽(이동휘 분)은 이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며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결국 새엄마인 지숙(유선 분)의 악행을 알아내고 다빈과 함께 법정에 선다. 그러나 영화는 국내에 이미 마련된 친권상실 등의 아동학대 방지 법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학대받은 아이는 아동보호기관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받다 친권자인 새엄마에게 되돌려 보내져 끝내 살해당하고 만다.
현행 민법상 ‘친권상실’은 자녀가 19세 성년이 되기 전까지 부모가 갖게 되는 아동의 거소지정권·징계권·재산관리권 등을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민법 제913조에서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는 동시에 민법 제924조에서는 이러한 의무를 저버린 부모에 한해 친권을 상실할 수 있도록 했다. 친권상실의 사유는 부모가 △자녀의 재산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처분하거나 자녀에게 가혹한 체벌을 행하는 경우 △방탕한 생활·상습도박 등을 하는 경우 △행방불명되거나 정신병원에 장기입원·구치소에 복역하는 경우 등이다.
친권상실을 신청하려면 자녀의 친족(8촌 이내 혈족·4촌 이내 인척·배우자) 또는 검사가 친권상실을 청구하고 가정법원이 부모에 대해 이를 선고하는 절차를 거쳐 친권을 박탈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의 친권을 박탈하는 것은 쉽지 않다. 친권상실 선고사건은 가정법원 합의부 관할사건으로 청구자는 조정전치주의에 따라 가정법원에 조정을 먼저 신청해야 한다. 해당 사유가 있다는 것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딪친다. 친권자를 대신할 미성년후견인도 반드시 지정해야 한다. 이런 탓에 제도의 유명무실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친권상실 제도의 문제점은 최근 ‘제주 전남편 살해사건’으로 사회에 충격을 준 고유정씨 사건으로 다시 불거졌다. 고씨의 전 남편 유가족들은 지난달 18일 제주지법에 친권상실을 청구했다. 유족 측은 “잔혹한 패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친권을 상실시킬 필요성이 매우 크다”며 “고인의 자녀 복리와 장래를 위해 하루빨리 고유정 친권이 상실되고 후견인이 선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전 남편 강씨가 소유하고 있는 각종 특허권 등 재산의 상속인이 아들로 돼 있는 만큼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고씨가 친권을 가져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후견인으로는 전 남편 강씨의 남동생을 지정했다.
친권상실 여부는 살인·사체유기 등의 혐의를 받는 고씨의 재판과 별도로 내려질 수 있다. 일반적으론 이혼 등 관련 재판의 영향을 받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범행이 잔혹해 친권상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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