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토지 등 부동산을 등기한 명의신탁자에게 실질적인 소유권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동산실명법상 명의신탁이 무효라는 점만으로 해당 부동산 재산을 불법으로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 2002년 9월 결정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와 같다.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농지 상속자 A씨가 농지의 등기 명의자인 B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다수의견(9명)에 따라 B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다수의견을 낸 9명의 대법관들은 “부동산실명법 위반으로 명의신탁약정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명의수탁자 이름으로 등기를 했다는 이유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2002년 대법원 전합 판례대로 부동산실명법이 부동산 소유권을 실권리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전제로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변동을 규율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날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신탁자로부터 명의수탁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가 이뤄지는 등기명의신탁의 경우 부동산 소유권은 등기와 상관없이 명의신탁자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고 판시했다. 17년 만에 기존 판례 변경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전합에 회부됐으나 기존 판례가 유지되면서 우려됐던 부동산 시장의 혼란은 일단락됐다. 대법원 전합은 판결문에서 부동산 명의신탁을 규제할 필요성이 있으나 법원 판단이 아닌 입법적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다만 조희대·박상옥·김선수·김상환 등 4명의 대법관은 부동산 명의신탁을 근절하기 위해 사법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기존 판례와 반대되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부동산법에 위반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례에 의해 유효성이 인정되기 시작한 부동산 명의신탁은 우리 민법이 취하고 있는 부동산 법제의 근간인 성립요건주의와 상충된다”며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러운 법적 유산”이라고 지적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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