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은 이란과 마주한 나라다. 총면적은 8만 6,600㎢로 9만 9,373㎢인 남한보다 영토가 조금 작다. 이웃의 조지아·아르메니아와 마찬가지로 지형 대부분이 산악지대인데 동부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다가 카스피해에 이른다. 땅에서 호수를 만나는 그 지점에 수도 바쿠가 자리잡고 인근엔 유전이 있다. 엄청난 천연가스가 매장돼 자연적으로 발화하는 불꽃을 볼 수 있다. ‘불의 나라’라는 나라 이름에 걸맞게 풍부한 석유·천연가스가 경제를 먹여 살린다.
유럽 국가로 분류되지만 이웃 조지아·아르메니아와는 달리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이다. 그럼에도 이곳이 불의 나라라 불리는 이유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자라투스트라는 불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터교(배화교)를 창시했다. 바로 이 조로아스터교의 세계 3대 성지 중 하나 ‘아테시카 사원’이 이슬람 국가 아제르바이잔에 있다. 이 사원 중앙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곳은 무슬림의 나라지만 다른 중동 국가와는 다르게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해 ‘샤리아(이슬람 율법) 통치’를 주장하는 폭동이 일어나 경찰관 2명이 사망한 사건도 발생했지만 곳곳에 경찰관이 많아 치안이 안전한 편이다. 이슬람 세계 최초로 민주공화정을 수립했고 오페라 하우스를 세울 만큼 나라를 개방했다. 세속주의 경향이 강해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길거리 흡연과 음주는 엄하게 금지된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예절을 지킨다면 큰 불편을 느끼지 않을 수준이라고 한다. 아제르바이잔을 다녀온 다수의 관광객들은 “안심하고 여행할 만한 나라였다”고 전한다.
아제르바이잔도 이웃 국가들처럼 저렴한 물가가 장점으로 꼽힌다. 화폐는 마나트(AZN)로 환율은 대략 1마나트당 600원(지난해 12월 기준) 선이다. 1리터 생수 한 병이 0.4마나트(약 240원), 맥도날드 칠리버거가 4.5마나트(약 2,700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몽골·알타이계로 음악과 풍습 등 유사성이 보인다. 우리가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 부르듯 이들도 한국인에 친밀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유로 어문대학에 중어나 일어과가 개설되기 훨씬 전부터 한국어과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는 길이 쉽지는 않다. 수도 바쿠행 인천발 항공권은 대략 90만~160만원선으로 책정된다. 에어프랑스·루프트한자를 비롯한 러시아·터키·대한항공 등이 경유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으며 최소 15시간가량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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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은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통로였다. 교통 요지였던 수도 바쿠와 셰키 등이 12세기 이후 실크로드 중계무역으로 성장한 도시다. 특히 바쿠는 페르시아·몽골·오스만 투르크·러시아 등 외세의 침입으로 다양성이 공존한 데다 카스피해 서부 연안에 자리잡은 지리적 이점으로 부를 쌓아올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 중 구시가지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시르반샤 궁전이 백미로 통한다. 아제르바이잔 건축 양식의 ‘진주’라 불리는 이 궁전은 15세기 셰마키에서 바쿠로 천도하며 축조됐는데 웅장하다고 할 순 없지만 모스크와 정원·연회장·목욕탕 등을 갖췄다. 화려한 면모와 대조적으로 궁전 외벽엔 총탄의 흔적도 있다. 소련군의 공격으로 성벽이 파괴될 때의 상흔으로 이를 잊지 않고자 일부러 남겨놓았다고 한다.
바쿠의 중심부엔 구석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고대 도시 이체리 셰헤르가 있다. 좁은 골목길이 얽혀있어 나름의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었던 만큼 방어에도 만전을 기했다. 12세기 외침에 대비한 성곽과 ‘정복할 수 없는 성역’이란 뜻의 메이든 탑(소녀의 탑) 역시 굳건히 모습을 지키고 있다. 성곽도시를 지키고자 쌓은 이 탑은 방어에 유리하도록 높이가 27m에 달한다. 탑 내부와 외부, 바닥의 석조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절단한 게 특징으로 내부엔 20명을 수용할 수 있고 가뭄에 대비해 빗물저장탱크 역할을 한 우물도 갖췄다.
군사시설에 어울리지 않는 소녀의 탑이란 이름엔 슬픈 사연이 있다. 옛 왕국 시절 어느 공주가 부왕에게 결혼을 허락받지 못했다. 이에 공주는 결혼을 포기하는 대신 탑을 세워 달라고 간청했고 탑이 완성되자 그 위에서 투신했다고 전해진다. 이후로 탑은 소녀의 탑으로 불렸다고 한다. 역사·문화의 보고 시르반샤 궁전·구 성곽도시·메이든 탑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러나 같은 해 발생한 지진에 난개발·어설픈 정책 탓에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2003년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리는 오점을 남겼다.
/김태원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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