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를 하루 앞두고 노사 양측이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으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경제단체들은 공동 입장문을 내고 노조의 단결권과 사용자의 경영방어권을 패키지로 협상하자고 주장한 반면 노동계는 1만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집회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며 정부와 국회를 압박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27일 낸 공동 입장문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은 자국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국가 주권적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이 1단계 논의에서 낸 단결권 관련 권고안과 경총의 경영방어권 관련 다섯 가지 요구를 동등한 패키지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단결권이 확대될 경우 노사관계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힘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입장문에서 이들 단체는 “ILO 핵심협약 비준은 자국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국가 주권적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노사관계를 협력적·타협적으로 전환하고 선진화할 노동개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올 초 경총에서 5대 요구사항을 제시했을 때와 같은 입장이다.
경사노위에서 협약 비준 문제를 논의하는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28일 전체회의를 열어 그간 경과사항을 국회로 넘길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공익위원들은 지난해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 △정부의 노조설립 심사권 축소 △특수형태종사자 노동권 보장 △공무원·교원 노조가입 확대 등 권고안을 낸 바 있다. 이에 사용자 측 공익위원들이 올 초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삭제 △직장 점거 금지 △쟁의행위 절차 명확화 △단협 유효기간 연장 등을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노동계도 이에 맞서 ILO 핵심 협약의 비준을 위해 지난해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이 발표한 권고안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협약의 우선 비준을 촉구했다. 평일인데도 전국에서 상경한 인원이 1만명을 웃돌았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ILO 핵심협약은 모든 국가가 가입하면 비준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역대 모든 정권이 약속했던 것”이라며 “노동권 보장에 대한 최소한의 국제기준으로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총이 요구한 다섯 가지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경영방어권’이 아니라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공격할 권한을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전날 성명을 내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국제적 이미지가 중요한 글로벌 경제 시대에 글로벌 노동기준인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겠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유럽연합(EU)이나 국제사회가 협약 비준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은 우리나라를 노동문제에서 반인권적 국가라 지적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박준호·변재현기자 violato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