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6일 이 전 대통령이 청구한 보석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원 인사 이후 재판부 변경으로 구속만기일까지 충실한 심리를 하기 어려우므로 임의적 보석 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속만기일이 재판부 교체 후 불과 43일밖에 남지 않아 항소심 심리기간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또 조건 없이 이 전 대통령을 석방할 경우 증거인멸의 우려가 더 높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재판부는 “구속기간 만료로 이 전 대통령이 석방될 경우 주거 또는 접견을 제한할 수 없다”며 “보석 조건을 붙일 수 있는 보석 허가 결정이 형사소송 절차 원칙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보석 조건으로 4대 조건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주거지를 서울 논현동 자택 한 곳으로 한정해 외출 제한 △배우자,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변호인 외에는 접견과 통신 제한 △10억원의 보증금 △매주 보석 조건 준수 보고서 법원에 제출 등이다. 보석 조건을 위반할 경우 즉시 보석이 취소되고 재구금된다. 보증금은 10억원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4시30분께 논현동 자택에 도착해 사실상 ‘자택연금’ 상태에 들어갔다.
재판부는 이른바 ‘병 보석’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동안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등 기업 총수나 유력 정치인 등이 병 보석으로 풀려나 비판적 여론이 일었던 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고령이나 건강 문제를 이유로 하는 보석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검찰과 피고인 측의 주장을 듣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 전 대통령 측은 올해 1월 항소심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다. 재판부 변경으로 구속기한 전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기 어렵고 수면무호흡증 등으로 돌연사 가능성도 있다며 불구속 재판을 호소했다. 반면 검찰은 석방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이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가 위급하지 않다고 맞섰으나 법원은 보석을 허용했다.
이날 재판부가 보석을 허용하자 검찰과 변호인단은 희비가 갈렸다. 이 전 대통령은 “(조건) 내용을 숙지했느냐”는 재판장 질문에 “숙지했다”고 답했다. 법정을 떠나면서는 지지자들에게 옅은 미소를 보이며 “지금부터 고생이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전직 대통령으로 재판을 받고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취에는 이번 법원 결정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이 이미 옛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에 불법개입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국정농단’ 혐의는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나 대법원이 구속만료기한인 다음달 16일 전에 선고를 내리지 못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은 기결수 신분이어서 불구속 상태에서의 재판이 어렵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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