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일이 있어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여 동안 마포구 상암동 집에서 강남역까지 오전7시에서 8시 전후 한 시간가량 운전을 한 적이 있다. 그간은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해온 터라 출퇴근 복잡한 시간대에 운전은 거의 처음이었다. 차를 몰고 집을 나와 강변북로를 타고 가다 한남대교를 건너서 강남대로에 진입하면 난관이 시작된다. 대부분 택시로 인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하철 공사 때문에 혼잡한 마당에 깜빡이도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는 택시들의 ‘칼치기’에 급브레이크를 밟기 일쑤였다. 강남역까지 가는 동안 똑같은 상황이 수도 없이 반복됐다. 차 머리부터 불쑥 들이미는 택시는 법인·개인 가릴 것 없었다. 본능적으로 경음기에 손이 가고 혼자만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정신 바짝 차리고 방어운전을 하지 않으면 사고가 나기 십상이어서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택시의 난폭운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난폭운전을 일삼는 택시운전사들은 하나같이 ‘먹고살려고’ 라고 말한다. 사납금을 채우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열악한 처우 탓이라는 설명인데 납득이 쉽지 않다. 새벽 일찍 일어나 회사로 향하는 대다수 직장인들 역시 먹고살기 위해서 운전대를 잡는다. 아마도 일부는 택시기사보다 벌이가 적은 사람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택시처럼 막무가내식으로 차를 몰지는 않는다.
택시들만 준법 운행을 하면 ‘한국은 운전하기 겁나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기자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7월 이런 제목의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젊은 혁신가들의 꿈을 짓밟는 택시업계라는 검은 카르텔을 이제는 청산해야 할 시대입니다.” 청원 게시자는 “안전하고 편안한 택시는 환상”이라며 “불법적인 난폭운전, 폭력적인 끼어들기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많은 국민이 공감을 표시했다. 실제 매년 들어오는 서울시의 교통불편 민원 2만~3만건 중 70% 정도가 택시 관련이다. 불만사항도 승차거부에 불친절·부당요금징수까지 망라돼 있다.
모레(16일)부터 서울 중형택시의 기본요금이 3,000원에서 3,800원으로 오른다. 시민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의식해서인지 택시업계와 서울시는 서비스 개선을 다짐하고 있다. 개인택시조합은 승차난 해소를 위해 심야운행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등 5대 다짐을 내놓고 서울시는 승차거부 택시 단속강화책 등을 제시했다. 5년 전 인상 당시에도 비슷한 약속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서비스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시민들은 별로 없지 싶다. 이번에도 똑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시간이 지나도 서비스 향상은 안중에도 없고 사납금 등 환경 타령만 늘어놓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 지경이 된 것은 택시를 ‘민심의 대변자’라고 떠받들며 눈치 보기에 급급한 지자체장 등 정치권과 정부의 책임이 크다. 택시면허를 남발해 시민의 불편을 초래해놓고서는 수습을 못하고 있다. 현재 서울 택시 수는 120명에 한 대인 데 비해 일본 도쿄는 360명에 한 대다. 그만큼 서울 택시가 과포화 상태인 셈이다. 그런데도 택시 감차는 지지부진하다. 최근의 카풀 도입 논란에 대해 정치권은 일자리 문제 등을 들어 추가 협의 필요성을 들먹이지만 실상은 내년 총선 표 계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아직도 택시기사들이 민심의 스피커 역할을 한다는 믿음에 사로잡힌 국회의원들이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얘기다.
이제 이런 맹신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모바일시대에는 민심의 대변자·스피커는 도처에 널려 있다. 정치권이 할 일은 이익단체 보호가 아니라 전체 국민이 바라는 바를 헤아리는 것이다. 국민들이 왜 택시업계에 냉소를 보내는지 직시하기 바란다. 이솝우화의 ‘양치기소년’처럼 거듭된 빈말로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이 몰고 오는 변화를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현실성 없는 대책으로 폭탄만 돌리지 말고 빨리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틀을 깨는 고통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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