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원전 산업의 국제 경쟁력’ 유지를 강조한 것을 계기로 범정부 차원의 해외원전 수주 지원 방안이 가동된다. 이는 에너지 정책이 환경·안정에 방점을 두던 청와대 사회수석실에서 경제수석실로 이관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행보로 보인다. 정부는 특히 한국·러시아·프랑스 등 원전 선진국 간 수주전이 치열해지는 체코 원전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해외 원전 수주 지원에 나선다는 점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설득할지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7일 “문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과 별개로 원전 수주전, 즉 원전 기술력을 활용해 국가적 이익을 취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며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후 미비했던 정책적·외교적 지원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 고위관계자도 “체코 원전 수주는 당초 러시아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국 원전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며 “한수원은 한수원 나름대로 열심히 뛰겠지만 범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이 참석한 여야정 상설협의체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기초로 원전 기술력과 원전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 앞에서 에너지 정책의 수정 등을 요구한 가운데 여야정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유지하면서 원전 수주 및 기술 경쟁력 등을 강화한다는 방안에 합의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문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탈원전에는 60여년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며 “그 기간 동안 국내 원전의 기술력과 수주 경쟁력을 유지하자는 것은 청와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과 상충하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한수원 등은 체코 원전 수주전에 주목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와 테멜린 지역에 각각 1,000㎿급 원전 1~2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준공해 2035년 상업운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현재 한수원과 함께 중국광핵집단(CGN), 러시아 로사톰, 프랑스 EDF, 프랑스·일본 컨소시엄 ATMEA, 미국 웨스팅하우스 등이 입찰에 뛰어든 상태다. 주요 원전 선진국들이 모두 뛰어들 만큼 치열한 수주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얘기다.
체코는 정통적으로 러시아의 입김이 강하고 기존 원전도 러시아가 지었다. 하지만 체코의 원자력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나 드라보바 원자력안전위원장이 지난달 한 공영방송에서 “한수원이 원전 건설 일정 및 예산과 관련해 최상의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국내 원자력 업계의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드라보바 위원장은 한수원이 UAE에 짓고 있는 바라카 원전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예산과 건설 능력 측면에서 볼 때 UAE에 원전을 공급하고 있는 한수원이 가장 좋은 사례”라며 “추가 분석이 필요하지만 시간과 예산을 고려할 때 한수원이 체코 원전을 맡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체코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 원전 수주전에도 정부가 외교적 지원에 나설지 주목된다. 한국전력은 영국 무어사이드 지역에 22조원을 들여 원전을 짓고 발전 수익으로 건설비를 회수하는 사업 추진을 위해 영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사우디 원전 수주전에서는 미국·중국·프랑스와 함께 한전이 예비사업자로 선정됐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형 원전이 체코 수출에 성공한다면 향후 유럽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윤홍우·강광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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