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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뮤지컬 한류' 이끄는 연출가 왕용범 "작품에 진심 담을 수 있다면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해"

상업적 코드 집착 순간 평범해져

남들 좋아하는 이야기 하지 말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 해야

'프랑켄슈타인' 日진출·中투자 유치

K뮤지컬 당당한 수출품 반열 올라

20대 승승장구 하다 한순간 나락

손수레 든 엄마 보고 철든 아들 돼

벼랑끝서 만든 '밑바닥에서'로 재기

힘 돼준 동생 결혼때 집 한채 사줘

뮤지컬 연출가 왕용범 인터뷰./송은석기자




“제 이름이 너무 크죠? 왕과 용과 범이 이름에 다 들어간 사람은 아마 저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큰 사람은 아니라서 이름값도 못 하는 것 같아요.(웃음)”

한국 창작 뮤지컬 연출계의 기린아 왕용범(44·사진) 연출은 건네는 말 한마디, 사람을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에 겸손함이 배어 있었다. 뮤지컬계에서 ‘까칠하기’로 정평이 난 왕 연출은 직접 마주 대하니 퍽이나 다정한 사람이다. 인터뷰 내내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라 겸손하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사뭇 세심하고 나긋한 인상을 풍겼다.

스스로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고 겸양을 보였지만 사실 왕 연출은 뮤지컬 창작자로 국내외에서 두루 명성이 높아진 지 이미 오래다. 한국을 넘어 일본과 중국에서 뮤지컬 한류를 일으킨 주역이 누구냐고 물으면 첫 번째로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왕용범’이다.

특히 그는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일본에 수출해 K뮤지컬의 위력을 보여줬다. 이제 ‘프랑켄슈타인’은 ‘벤허’와 더불어 창작 뮤지컬도 라이선스 공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작으로 꼽히게 됐다. ‘김종욱 찾기’ ‘웃는 남자’ ‘마타하리’ 등이 일본에서 라이선스 공연될 수 있었던 것 역시 ‘프랑켄슈타인’이 보여준 한국 창작 뮤지컬의 높은 완성도 덕이었다. K뮤지컬이 왕용범에 의해 명실공히 수출 상품의 반열에 오르게 된 셈이다.

더욱 놀라운 성과는 올해 초 ‘프랑켄슈타인’과 ‘벤허’가 중국 투자사로부터 각각 100만달러(약 11억3,000만원)의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중국으로 라이선스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중국에서 직접 투자를 받은 첫 사례다. 왕용범에 의해 K뮤지컬은 일본에 이어 중국에서도 붐을 일으킬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뮤지컬 연출가 왕용범 인터뷰./송은석기자


왕 연출의 K뮤지컬이 어떻게 한중일 3국에서 한결같이 사랑받을 수 있는 걸까. 그는 ‘진심’에 그 비결이 있다고 말한다. “진심을 담는 연출이 왕용범의 연출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문화가 산업화하면서 상업적인 코드를 넣고는 하는데 이렇게 접근하는 순간 작품은 평범해져요. 진심이 담긴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해도 특이하게 보인다 해도, 나아가 괴상해 보일지라도 진심을 담은 작품이라면 관객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 늘 ‘진심’을 강조한다고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말을 들려줍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해라. 그것은 당신의 이야기다. 그게 바로 헤드윅 같은 이야기다. 남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마라. 우리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관객들이 좋아해주는 것은 예술가의 복이다’라구요.”

‘뮤지컬 한류’의 주역인 왕용범에게는 그 나름의 연출 철학이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만 고집할 게 아니라 ‘메이드 바이 코리아’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도 그렇고 ‘벤허’도 그렇고 그는 창작 뮤지컬의 소재로 서양 작품을 골랐다. “어디에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겁니다. 독일의 브레히트 작품도, 프랑스의 ‘레미제라블’도 한국에서 만든다면 바로 한국 작품인 것이죠.”



그는 이제는 과거의 구태의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피는 우리의 문화가 아닙니까? 어벤져스는 우리의 문화가 아닙니까?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라고만 생각했다면 빌보트차트에 올라가지도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먼저 문화에 대한 벽을 쌓지 말고 문화의 영토를 넓혀야 합니다. 영토를 넓히는 것은 해외 진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세계의 문화를 흡수하는 것 역시 우리 문화의 영토를 넓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부리부리한 눈매에 말끔한 외모를 지녔으며 20대부터 뮤지컬계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해온 왕 연출이다. ‘실패’라는 단어가 썩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그에게도 혹독한 시련이 있었고 너무 이른 성공이 독이 돼 돌아오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때의 시련은 그에게 시린 기억으로 각인돼 있다. “25세에 ‘서푼짜리 오페라’를 뮤지컬로 각색해 조직폭력배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한국 최초의 랩 뮤지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이 작품이 매회 거의 전석 매진을 기록했죠. 너무 일찍 연출가가 됐고 그 나이는 더 노력해야 하는 시점인데 너무 일찍 성공한 거죠. 내친 김에 연극을 만들었는데 이게 망해서 큰 적자를 냈어요.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정말 엄마가 손수레에 짐을 싣고 계시더라고요. 당시에 논현동에 빌라도 올리고 잘살았는데 한순간에 그렇게 됐고 집안이 힘든 줄도 모르고 나는 나 좋아하는 것만 했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죄송해서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그날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왕 연출은 본격적으로 ‘철든’ 아들이 됐다. “아침부터 전단을 돌렸어요. 시급이 ‘센’ 아르바이트는 다 했죠. 연기학원에서 연기도 가르치고 아르바이트를 새벽4시까지도 했어요.”

성공이 독이 되더니 그 독이 다시 약이 될 줄이야. 그때 겪은 시련과 역경은 천재 연출가 왕용범을 만들어준 뮤지컬 ‘밑바닥에서’를 무대에 올리는 계기가 됐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밑바닥에서’를 연출하게 됐죠. 이게 잘돼 뮤지컬 시상식 후보에도 오르고 그때부터 작품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 어려운 시절 왕 연출의 동생도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연극을 하고 싶어 했던 동생이 ‘돈은 내가 벌게. 형은 작품해’라고 말하며 많이 도와줬어요. 현재의 제가 있는 것은 동생 덕이기도 해요. 그래서 재작년에 결혼할 때 집 한 채를 사줬어요.(웃음)”

왕 연출에게 “까칠한 성격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그렇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거침없이 답했다. “저는 무섭게 할 의도가 아니었는데 자리가 만든 성격인지 무섭게 보이고 또 까다롭게 보이는 것 같아요. ‘까칠한’ 성격도 맞고요. 친구도 별로 없어요. 저는 명절 때도 배우들에게 귤 하나를 안 받아요. 작품에 영향을 줄까 봐 그래요. 그리고 저는 따로 배우들과 회식을 한다든가 하는 일도 없어요.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돼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돼서죠. 그래도 저는 어디를 가도 당당합니다. 저를 욕하는 사람 앞에서도 저는 당당해요. 물론 당당한 만큼 뒤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요.”

까칠한 연출 왕용범이지만 아내인 뮤지컬 배우 서지영 앞에서만큼은 순한 양이다. 그는 그동안 잘 공개하지 않았던 러브스토리도 털어놓았다. “아내가 여섯 살 연상이고 아내의 부모님이 의사이시고 저는 가난한 연극쟁이라서 결혼 승낙을 못 받을 줄 알았어요. 장인·장모님을 처음 만났는데 정말 한동안 아무 말을 안 하셨어요. 그러다 장인어른과 제 생일이 같다는 것을 아시게 되면서 말문을 여셨어요. 사귄 지 1년 만에 결혼 승낙을 받고 서른넷에 결혼했지만 3년은 후회했어요. 이렇게 아내를 고생시킬 거면 왜 결혼을 했나 싶었죠.”

왕 연출은 결혼한 지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준상·류정한과 함께 아내 서지영을 가장 훌륭한 뮤지컬 배우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다. “아내는 정말 무대 위에서 진심으로 연기하는 배우예요. 제가 연극을 무대에 올리던 당시 제 작품을 보러 와 알게 됐고 정말 너무나 아름다워서 예전에 ‘미니홈피’를 수시로 드나들며 아내를 ‘염탐’했죠. 제가 고백했을 때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받아줬어요. 이유는 불쌍해 보여서래요.(웃음) 추운데 늘 똑같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벌벌 떨고 있으니 벙어리장갑을 사주더라고요.”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74년 대구 △1997년 서울예술대 연극과 졸업 △1998년 뮤지컬 ‘서푼짜리 오페라’ △2005년 뮤지컬 ‘밑바닥에서’ △2006년 뮤지컬 ‘컨페션’ △2008년 뮤지컬 ‘뉴 뮤지컬 햄릿-월드버전’ △2009년 뮤지컬 ‘삼총사’ △2010년 뮤지컬 ‘잭더리퍼’ △2012년 뮤지컬 ‘캐치미이프유캔’ △2013년 뮤지컬 ‘보니앤클라이드’ △2014년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제8회 더 뮤지컬 어워즈 연출상(프랑켄슈타인) △2017년 뮤지컬 ‘벤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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