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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입맛 따라 춤추는 판결 기준... 사법 불신 갈수록 늘어

양승태 사법부, 탄핵국면서 "진보로 판결하라"

朴에 로비하고 전병헌 보좌관 형량 삭감도 검토

文임명 대법관 과반… 판결 기조 또 바뀔까 우려

국정농단·MB 사건 등 영향 클 듯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하야·탄핵 국면에 ‘진보 판결을 내놓아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법원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은 각종 재판거래 의혹을 통해 법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 보수화됐던 게 아니냐는 의심만 제기됐다. 그러나 해당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법부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권력 이동에 따라 판결 기준을 바꾼다는 의혹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대법관들이 대거 교체되면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등 주요 사건의 최종 결론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朴에 로비하다 국정농단 땐 ‘진보 판결’ 주문=법조계는 지난달 31일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미공개 파일 196건 가운데 특히 ‘대통령 하야 정국이 사법부에 미칠 영향’이라는 문건에 주목했다.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시절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청와대·국회·언론을 상대로 로비를 펼친 정황은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였으나, 이 문건은 이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양승태 사법부는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직후 사법 기조를 바꾸라는 황당한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박근혜 정부 내내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협조 방안을 구상하다 상황이 바뀌자 법관들에게 “정치적으로 진보 판결을 내리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대한민국 중도층의 기본 스탠스는 정치는 진보, 경제·노동은 보수”라며 “대북 문제를 제외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과감히 진보적인 판단을 내놓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 “표현·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해 계속 진보적 판단을 내놓아야 한다”며 “(촛불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백남기 부검영장 발부는 매우 시의적절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사법부가 법과 양심이 아니라 권력의 이동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도 있는 조직임을 의심케 한 부분이다.

문건 뒷부분에는 아예 민주당 계파 분석표까지 싣고 친노·친문이 개헌을 주도할 것이라며 이들을 집중 분석했다. 문건 작성 당시는 개헌은커녕 아직 탄핵안이 국회에 상정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법원행정처는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전해철 의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마치 새 권력에 줄을 대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를 정치기관으로 격하하기 위한 자체 개헌대응반까지 준비했다.

아울러 최근에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청와대를 찾아가 강제징용 소송을 상의한 의혹과 법원행정처가 민주당 전병헌 전 의원 보좌관의 형량 삭감을 검토한 의혹이 동시에 제기됐다. 사법부는 ‘권력’ 그 자체를 대응했을 뿐 여야, 진보·보수를 구분하지는 않았던 셈이다.

김명수 현 대법원장. /연합뉴스




◇대법관 구성 변화로 판결 기조 또 바뀔까 우려=이런 가운데 이달부터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대법관이 전체의 절반을 넘기면서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또다시 판결 기조를 청와대 코드와 맞추는 게 아니냐는 불안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은 하나인데 권력이 바뀔 때마다 법 해석이 달라지니 장단을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일 김선수(사법연수원 17기)·이동원(17기)·노정희(19기) 신임 대법관이 본격 취임하면서 대법관 14명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8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로 채워졌다.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구성원도 현 정부 인사가 과반(7명)에 도달했다. 남은 대법관 6명 중 유일하게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된 김소영 대법관은 오는 11월2일 퇴임한다. 대법원은 지난 3일부터 김 대법관 후임자 추천 작업에 들어갔다.

대법관 구성 변화로 법조계는 당장 2심 선고를 앞둔 박 전 대통령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국정농단 사건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미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가 심리에 들어간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사건은 그 중 주목도가 가장 높은 재판이다. 김창석 전 대법관이 빠지고 이동원 대법관이 들어오면서 대법원 3부 구성원은 박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수가 각각 2명으로 같아졌다. 삼성 뇌물 인정 여부는 박 전 대통령 사건과 겹치는 쟁점이기 때문에 두 사건이 추후 병합돼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가능성도 높다.

이 전 대통령 사건도 상고 가능성이 높아 대법관 교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쌍용차 노조 손해배상 청구, 통진당 국회의원 지위 확인 등 대법원서 계류 중인 사건들의 결론에도 관심이 쏠린다.

헌법재판소 역시 현 정부 들어 기존 판례를 뒤엎는 예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사상 처음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쪽으로 결론을 낸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대표 사례다. 또 국회·법원 앞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을 최근 잇따라 위헌으로 판단하는 등 헌재 판결에 진보색이 강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헌법과 법령은 그대로인데 정권에 따라 사법부 판단이 달라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며 “사법부를 최대한 믿어보려고 했는데 이번에 공개된 문건 내용을 보고 나서는 모든 신뢰가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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