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이대와 충무로, 공덕동, 해방촌을 걸쳐 제5탄으로 뚝섬 골목 살리기에 나섰다. 뚝섬은 최초로 제보를 통해 찾은 골목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 있는 도전이 됐다. 800여 건의 제보 중 추리고 추린 곳이었다.
뚝섬 식당들의 특징은 오픈한 지 1년 미만의 가게들이라는 것. 비교적 젊은 나이대의 사장님들의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해 힘들다’는 호소에 백종원이 움직였다. 서툴고 요령 없는 그들에게 노련한 장사꾼의 비법을 전수해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뚝섬의 식당들은 백종원과 시청자를 모두 실망시켰다. 실망에 이어 경악할 수준까지 갔다. 음식을 다룰 때 가장 기본이 돼야 할 위생 상태부터가 엉망이었다. 음식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손님을 향한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샐러드집의 간마늘은 냉동이 아닌 냉장보관을 한 탓에 장아찌가 됐고 연어는 키친 타올에 싸서 보관했다. 이는 차라리 약과였다. 족발집에서는 고무장갑을 끼고 양념을 발랐으며 족발 삶는 통에는 조리용 망이 아닌 양파망이 들어가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장어집이었다. 빨래판에 음식을 내온 것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굵고 긴 가시는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먹으면서 뱉어내야 했다. 문어와 소라는 해동한다는 핑계로 실온에 내놨다. 백종원은 식중독을 우려하며 화를 냈다.
뚝섬 식당의 음식을 맛본 백종원은 “기본이 안 됐다”며 급기야 뱉어내기까지 했다. 평소에 음식에 대한 애정, 손님에 대한 예의를 중시했던 그는 “돈을 받고 음식을 파는데 있어서 하면 안 되는 짓을 한 거야. 기만이야 사기인 거고”라며 분노했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식약처 및 담당 기관의 대대적인 식당 위생 점검과 불시점검의 시행을 촉구한다”며 글을 올렸다. 현존하는 자영업 식당의 위생상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되니, 식약처에서 대대적 위생단속과 불시점검을 상시 시행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뚝섬 식당들은 기본적인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경양식집에서는 돈가스 가게 20곳을 가봤다고 말했지만 막상 리스트를 적으라고 하니 쩔쩔맸다. 번호를 생략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학교식당과 김밥집을 넣기도 했다. 장어집은 장어를 8천 원에 판매한다며 손해보고 파는 듯 생색냈으나 알고 보니 다른 가게에서는 한 마리에 4~5천 원 하는 페루산이었다. 백종원의 미역국에만 소고기를 더 넣고 평소에도 그런 듯 뻔뻔한 태도는 덤이었다.
앞서 ‘백종원의 푸드트럭’도 그랬듯, 솔루션 프로그램의 특성상 현 상황이 열악하거나 충격적일수록 개선 이후 효과가 커 보이는 것은 맞다. 회가 거듭됨에 따라 지루함을 탈피하기 위해 어느 정도 시선을 끌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는 된다. 앞서 국수집이나 원테이블이 그랬듯 이번 뚝섬 편 역시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골목식당’의 취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백종원은 “장사를 하면 외롭다. 다른 건 필요 없고 방향만 알려주면 좋겠는 거다. 그 방향이 맞다는 확신만으로도 굉장한 힘이 된다”며 장고 끝에 출연을 결정했다. ‘골목식당’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긍정 에너지를 주겠다는 포부였다. 지금으로서는 샐러드집, 장어집, 경양식집을 살릴 명분이 크다고 볼 수 없다.
물론 항상 ‘분노 유발’만 했던 건 아니다. 충무로 떡볶이집, 공덕 김치찌개, 해방촌 횟집 등 좋은 사례로 꼽히는 식당이 몇몇 있었다. 손이 느린 식당에는 시간을 단축할 방법을 알려줬고 장사요령이 없는 식당엔 인테리어와 메뉴판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골목식당’의 본질이 가장 잘 반영된 사례였다.
백종원에게 모든 식당을 살릴 의무는 없다. ‘골목식당’이 제2의 ‘먹거리X파일’도 아니다. 안일한 실태를 꼬집기 보다는 간절한 이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전 성공 사례처럼 맛은 있지만 효율적 조리법을 몰라 고생하거나, 장사수완이 없어서 마진이 남지 않는 식당들을 찾아가 ‘납득할 수 있는 골목상권’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높다.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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