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나랏돈으로 메우려는 ‘재정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의 불만에 3조원 정도의 일자리안정자금으로 대응하고 있다. 민간 기업이 부담할 임금을 나랏돈으로 메꿔주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일자리를 해결한다면서 두 차례에 걸쳐 약 15조원의 추경을 편성했고 노동시간 단축 시행에 따른 부작용도 나랏돈으로 막겠다고 한다.
정부는 집권 5년 동안 예산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의 두 배가 넘을 정도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겠다는 중기재정운영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세계 각국이 복지 축소 등 씀씀이를 줄이는 작은 정부로 가고 있는데 한국은 거꾸로 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재정만능주의, 문재인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실망스럽다. 통계청의 올 1·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 하위 20%의 소득은 8% 줄고 상위 20%의 소득은 9% 늘어났다. 소득격차가 오히려 심화됐다. 지난 5월 청년 실업률은 10.5%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올 3~4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에 접근해 있다. 소득주도성장 추진 1년 만에 서민·청년·중소기업 등 경제적 약자와 관련된 경제지표가 심각할 정도로 나빠지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정책’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최저임금을 5년간 54% 인상하는 정책은 OECD에서 유례가 없다면서 한국의 국제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없는 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을 권고했다. 또 한국 정부의 무분별한 재정 확대는 앞으로 발생할 통일 잠재적 비용과 맞물려 오는 2060년 국가 순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96%로 폭증한다면서 공공고용 및 사회지출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워 나랏돈을 풀고 기업을 옥죄는 방법으로 가계소득을 늘려주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경제가 선(善)순환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정부가 세금으로 늘리는 일자리는 임시방편이고 청년 실업자에게 나눠주는 돈은 진통제에 불과하다. 이런 재정운영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만 늘리고 경제적 약자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여기서 영국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경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하이에크는 1988년 발표한 그의 저서 ‘치명적 자만’에서 “정부가 통제권을 갖고 계획을 세워 운영하면 경제가 더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부(富)의 불평등도 정부가 세금 등으로 조정하고 일자리도 재정을 풀어서 만들고 물가도 통화정책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본다”면서 “이와 같은 ‘치명적 자만’의 결과는 원래의 선한 의도와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기술했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부정책의 피해자는 경제적 약자임을 지적한 것이다.
지금은 정부와 기업이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먹거리 개발에 나서야 할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이런 시대에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혁신성장’을 소홀히 해왔다. 이 와중에 많은 기업이 해외 탈출을 택했고 투자와 고용은 쪼그라들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 규모는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 투자의 3배나 된다. 이로 인해 해외로 빠져나간 일자리는 100만개에 이른다. 이래서는 한국의 성장과 고용에 미래가 없다.
정부는 규제완화로 기업의 ‘기(氣)’를 살리고 생산성 향상을 전제로 한 ‘노동개혁’으로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 여기에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시장경제주의’에 충실한 정책을 펼쳐 기업의 혁신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이래야 국내 투자가 늘어나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와 가계소득이 늘어나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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