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직후인 22일 오후11시55분. 이 전 대통령이 머물던 서울 논현동 자택 인근은 별다른 소요 없이 적막감만 흘렀다. 경호인력과 취재진만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검은색 K9 검찰 차량이 들어서면서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22일 오후11시6분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 불과 50분 만이었다.
검찰이 도착하자 자택에 머물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효재 전 정무수석 등 측근 20여명은 어두운 표정으로 줄줄이 자택 앞에 나와 차량 뒤에 도열했다. 이들 대부분은 참담한 심정인 듯 두 손을 모으거나 고개를 숙였다.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와 딸들도 함께 나와 울먹였다.
23일 0시가 되자 검찰 관계자와 함께 검은색 코트에 정장 차림을 한 이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속이라는 본인 운명을 받아들인 듯 굳은 표정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측근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자택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 전 대통령이 호송차량에 탑승하자 측근들은 차량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해산했다.
이날 구속 전까지 하루종일 두문불출했던 이 전 대통령 자택 인근에는 이 전 대통령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이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위는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쥐를잡자특공대와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등은 이날 자택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의 행위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것으로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구속을 촉구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의 ‘대국민 성명’은 없었다. 다만 구속영장 발부 직후인 22일 오후11시14분 페이스북을 통해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는 구속을 이미 직감한 듯 21일 새벽에 작성된 것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지금 이 시간 누굴 원망하기보다는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심정”이라면서도 “기업에 있을 때나 서울시장·대통령직에 있을 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어 “깨끗한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지만 오늘날 국민 눈높이에 비춰보면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면서 “재임 중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가족들이 인륜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고 있고 휴일도 없이 일만 했던 사람들이 나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내가 구속됨으로써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가족의 고통이 좀 덜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윤경환·안현덕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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