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지난 10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와 ‘평양 초청’ 메시지를 전하면서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 이후 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통일·외교·안보 분야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는 북한의 정상회담 선(先)제안에 대해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에는 이번 제안이 오는 4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일정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혼선을 주면서 핵 무력 완성을 위한 시간까지 벌 수 있는 ‘꽃놀이패’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우리는 자칫하면 한미공조 균열과 대북제재 이완의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한미공조 와해와 제재 무력화가 북한의 노림수인 상황에서 우리가 평양에 가서 합의를 하고 선언을 하면 우리가 먼저 제재를 무너뜨리는 게 돼버린다”며 “당장 중국부터 ‘한국도 저러는데’ 하는 식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 교수는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날 경우 독이 든 성배가 될 것”이라며 “당장 미국은 세컨더리보이콧을 강화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금융자본을 활용해 한국 정부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만약 우리가 (별다른 논의도 없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덜컥 수락했다면 북핵을 인정하는 게 돼버리고 그로 인해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게 됐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바로 받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의 제안은 북한 입장에서 ‘꽃놀이패’라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우리가 북한 제안을 받아들이면 한미연합훈련을 못하게 되고 제재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북한의 미사일 개발 시간은 늘어난다”며 “또 우리가 연합훈련을 해버리면 북한은 미사일 실험발사 명분을 얻게 된다”고 지적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부부장의 ‘평양 초청’ 메시지를 원론적 수준이라고 봤다. 고 교수는 “정상회담이라는 것은 충분한 물밑 교섭과 의제 조율이 돼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 면에서 문 대통령도 여건이 조성되고 성과가 기대되면 할 수 있다는 정도로 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펠로들은 성과가 담보되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는 북미대화가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북미대화 가능성은 높지 않게 봤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중재 역할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고 교수는 “이번 대표단의 규모를 볼 때 김 위원장의 관계개선 의지가 빈말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남북관계는 핵 문제 탓에 독자적으로 진전시킬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북미대화나 다자대화가 필요하고 이런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황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정상회담 제안은 북한 입장에서 보면 남북관계 의지가 담겨 있고 두 번째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에 접근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도 담겨 있다”며 “북미대화가 쉽지 않지만 한미가 조율하고 미국을 설득해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무엇보다 4월 한미연합훈련이 분수령”이라며 “이를 관리하지 못하면 평창 이전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되면 타격은 북한·미국이 아닌 한국이 입는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결국 이 같은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북한의 정책 전환을 이끌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효정·하정연기자 j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