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남한 김여정이 김정은의 ‘문재인 대통령 방북 초청장’을 가지고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고 화답하면서 정상회담 의지를 피력했다. 계절의 변화처럼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면 한반도 안보상황도 봄을 맞이할 것인가. 올림픽 경기보다 이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더 뜨겁다.
동계올림픽과 ‘방북 초청장’이 봄을 가져다줄지는 북한에 달려 있다. 봄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서 시작되고 그것은 북한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과연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있을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없다. 대화로 비핵화 가능성은 있을까. 반반이다. 북한이 견디지 못할 때 대화에 나오면 가능하다. 반대로 견딜 수 있는 상태에서 핵 능력을 완성한 후 나오면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 지금은 북한이 힘들어도 못 견디는 정도는 아니다. 대화에 의한 비핵화가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이런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우리는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에 환호했지만 김정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핵 무력을 완성하기 위해 실전배치까지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관건은 국제제재에 어떻게 버티느냐이다. 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남북관계를 이용해 국제제재와 한미동맹을 흔드는 것이다. 올림픽 참가와 방북 초청장은 이를 위한 카드다. 두 번째는 내부통제·자력갱생 등 제재 완충대책과 밀무역·해킹 등 불법 제재회피 대책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해킹은 북한의 뛰어난 사이버 능력과 밀무역까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어 앞으로 주된 외화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내밀면서 핵·미사일 시험을 재개할 것이다. 아직 미국이 인정할 정도로 핵 무력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오는 4월부터 시작되는 연합훈련을 핑계 삼을 것이다. 미국은 합법적인 연합훈련과 불법적인 핵 개발을 연계할 수 없다고 분명히 표명했다. 우리 입장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닥칠 위기는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몇 번 시험만 더 하면 북핵은 미국 본토를 확실하게 위협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우리는 이미 북핵 위협에 놓여 있기 때문에 미 본토 위협은 우리와 상관없다”고 말한다. 틀린 말이다. 본토가 위협받게 되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다. 첫째, 협상 문턱을 낮춰 비핵화 대신 핵 동결로 북핵을 마무리할 수 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동맹의 안전을 희생한다는 의미다. 그러면 북핵은 국제사회와 한미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만의 문제가 된다. 우리에게는 재앙이다. 둘째, 군사적 해결이다. 선제타격·예방타격과 함께 최근 대두된 ‘코피작전’으로 비핵화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압박수단에 불과하지만 실제 시행되면 우리가 부담할 위험과 비용이 너무 크다.
북한의 핵 무력은 올해 내 완성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는 6·25전쟁 후 가장 어려운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과거처럼 뒤로 미룰 수도 없다. 위기를 딛고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북한이 핵 무력을 완성하기 전 버틸 수 없도록 만들면 된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북핵을 이고 살아야 하고 평화는 깨진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하면 우리가 앞장서서 대북제재를 경제봉쇄 수준으로 높이고 미국과 함께 군사옵션도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중국이 움직이고 북한이 협상에 나올 수밖에 없다. 진정한 평화적 해결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올림픽은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남북대화나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기대는 평화의 길을 어렵게 할 뿐이다. 잠깐 안도할지 몰라도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수십년간 겪고도 아직 북한을 모르는가. 평창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일 뿐이라는 냉정함이 훗날 진정한 봄을 가져다줄 것이다.
신원식 예비역 육군 중장·전 합참 작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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