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것은 우리의 노동생산성 향상이 자본투입보다 생산과정의 효율성 개선에 주로 기인한다는 KDI의 지적이다.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면서도 생산성은 최하위권에 머무르는 것이 산업현장에 자리 잡은 비효율적인 근로관행 때문이라는 것이다. KDI는 연장근로에 과도한 혜택을 주는 왜곡된 임금체계가 장시간 근로를 부추긴다면서 무리한 정책 추진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다. 근로시간 단축을 밀어붙이는 식으로 압박하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고 시장의 혼란만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엊그제 국회 예산정책처가 주당 근로시간이 1%포인트 줄어들면 초기에만 노동생산성이 0.99%포인트 상승할 뿐 효과가 빠르게 소진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근로시간 단축만으로는 생산성 증대나 고용창출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한결같은 경고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향상을 전제로 해야 혁신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자면 근로자들이 효율적으로 짧게 일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임금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직무나 성과를 근거로 보상받는 제도를 확대 보급하고 양이 아니라 질적 노동시간 관리를 통해 평가하는 업무 시스템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누구나 역량 향상에 따라 임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근로문화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KDI는 근로시간을 획일적으로 정하지 말고 노사의 자율적 협의에 맡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속도전에 나선 정부와 정치권이 유념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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