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 800억원대의 A사 대표는 한국형 히든챔피언인 ‘월드클래스300’ 사업 신청을 준비중이다. 문제는 A사가 특별한 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A사 대표는 “아직 구체적인 기술 개발 계획은 없다”며 “외부 업체로부터 컨설팅을 받아 서류와 시제품 계획안만 그럴싸하게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하면 중소기업 전용 R&D 자금과 지원기간도 확대된다고 해 더 수월할 것 같다”며 들떠 있다.
25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중소벤처기업부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업계에서는 중소기업청이 중기부로 승격해 예산 규모가 커져 지원금도 많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신생 중기부는 양적 지원보다는 중소기업의 질적 성장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중소기업을 보호의 객체가 아닌 경쟁의 주체로 만들도록 정책의 패러다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중소기업=약자’란 프레임이 50년간 지속돼 오면서 지나치게 ‘보호’에만 예산이 집중돼 오히려 ‘좀비기업’을 양산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좀비기업’ 걸러내고 강소기업 도와야=올해 중기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은 6,500여 개 사업, 9,500억 원 규모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5년 국정과제에 따르면 중소기업을 위한 전체 R&D 예산은 2조원대까지 확대된다. 하지만 예산 확대 이면에는 ‘시혜성 지원’이 커질 우려도 있다. 올해 ‘중기 지원’이란 꼬리표를 달고 집행되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은 16조원이 넘는다.
특히 중기부는 앞으로 정책과 예산에 있어서 이전보다 한층 강한 조정기능을 갖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될성부른 떡잎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잘 선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동안 중기 예산이 인공호흡기처럼 일부 기업들의 생존을 연명시켜주는 이른바 ‘좀비기업’을 위한 자금으로 전락한 점은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중소기업 정책금융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진흥공단·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기관으로부터 지원받은 기업들의 총자산영업이익률 증가분(2011~2013년)이 지원받지 않은 유사기업들보다 평균 1.1%포인트 낮았다. 장우현 KDI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인재 육성에 투자하며 직원과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을 발굴해 지원해야 한다”며 “이제는 지원정책이 기업의 사업성과 기술력·경쟁력 등 질적인 성장을 돕는 쪽으로 질적 전환돼야 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벤처 인증 남발 대신 성장동력 육성을=“기술보증기금 보증으로 벤처 인증받는 게 가장 쉽잖아요.”
최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벤처기업협회 행사장에서 만난 기업인들의 반응이다. 협회에 따르면 현재 벤처기업수는 3만4,124곳으로 이 가운데 기술평가보증·대출로 확인받은 비율은 무려 90.4%다. 반면 민간 벤처캐피탈(VC) 등으로부터 사업성을 인정받아 투자를 유치해 벤처기업 확인을 받은 경우는 고작 3.6%에 그친다.
이렇다보니 혁신 벤처의 성공스토리는 많지 않고, 창업 후 20~30년이 지난 성숙기업이나 제조업 위주의 재무안정성이 좋은 기업들이 벤처 인증을 받아 ‘1,000억 벤처’로 둔갑해 벤처인증 제도의 성과를 과장하는데 악용되고 있다. 벤처기업은 세제혜택(창업 3년 이내 벤처 확인기업)과 코스닥 상장이나 정책자금 대상 선정, 입지 등에 우대를 받는데 확인제도 남발로 국가 자원이 잘못 배분되고, 시장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이 큰 실정이다. 한마디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조영삼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벤처기업정책은 일반기업보다 조금 나은 기업군이 아닌, 유의미한 성장동력을 발굴·육성하는데 힘써야 한다”며 “신규성과 혁신성, 비즈니스모델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숫자 늘리기 목표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백주연·임진혁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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