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이다. 국방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관련 보고 누락 논란이 확산 일로다. 시각도 제각각이다. 청와대의 서슬이 퍼렇고 국방부는 말을 아끼지만 입이 나왔다. 불만이 있다는 얘기다. 정당들 역시 입장이 다르다. 언론은 한술 더 떴다.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사태의 원인과 해법을 짚어도 모자랄 판에 일부 언론은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고 호들갑이다.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분명히 국방부에 있다. 청와대 국정자문기획위원회 보고에 사드 4기의 국내 반입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것은 누가 뭐래도 잘못이다. 더욱이 청와대 발표대로 처음에는 포함됐다가 빠진 것이라면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 특유의 애매모호한 화법도 논란을 키웠다. 결정적으로 정의용 안보실장과 한 장관의 지난달 28일 오찬 회동이 일을 그르쳤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사드 4기가 추가로 들어왔다면서요?”라는 정 실장의 질문에 한 장관은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정 실장은 바로 이 대목에서 의구심을 굳히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튿날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 확인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 지시를 내렸다. 겉으로만 보면 국방부와 한 장관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정부 입장에서는 항명 또는 집단 반발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방부의 일방적 잘못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적어도 두 개의 의문이 남는다. 무엇보다 정 실장과 한 장관이 지난달 28일 오찬에서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1시간 넘게 그 두 마디밖에 없었나. 정 실장이 마음속에서 칼을 갈고 던진 질문에 한 장관이 걸려들었을까. 아니면 한 장관의 퉁명스러운 반어적 답변에 정 실장의 말문이 막혔을까. 꼬리를 무는 질문에 해답은 없고 상황만 보인다. 불통(不通)과 불신(不信)의 점심 식사.
적(敵)과 마주 앉은 자리도 아니고 업무 인수인계를 논하는 오찬이었을 텐데 둘 중 어느 한 명이라도 재차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이어나갔어야 마땅하다. 더군다나 국방부 업무 보고의 고의 누락 여부를 조사한 지 이틀이 지났던 상황 아닌가. ‘뜨거운 감자’를 놓고 말 두 마디만 교환한 채 오해를 키웠다면 두 사람은 중요한 직책을 맡을 자격이 없다. 문 대통령의 모토가 소통 아니던가. 군대에서도 작전 실패는 용납하지만 경계 실패나 보고 누락은 용서하지 않는다.
아쉬운 대목은 또 있다. 정 실장이 새로 임명되고 김관진 전 안보실장이 퇴임할 때 청와대에 파견된 각 부처의 공무원과 각군 파견 장교들은 ‘복귀하라’는 통고를 받았다. 소속 군의 명령에 따라 보직을 이동하는 군인의 사정은 도외시한 채 ‘나가라’는 통보만 내려왔다. 다행히 하루 뒤 일부는 남았다. 안보실의 군 인력을 제대로 활용했다면 보고 누락 논란은 발생하지도 않았다. 청와대에 파견된 장교들에게 관련 자료를 가져오라는 지시가 그동안 왜 없었는지 의문이다. 사드 문제는 문 대통령의 관심 사안이고 외교 현안 아니던가. 안보실의 모든 자료마저 삭제·파쇄되지 않았다면 새로운 안보실장은 현안을 파악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청와대가 보고 누락을 계기로 삼아 국방부에 대한 군기 잡기에 나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군의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온당하다. 분명히 그런 징후도 있다. 사드와 관련해서는 혐의가 짙다. 배치 결정 이전에 국민적 합의 도출을 건너뛴 점은 제외하더라도 국방부가 그동안 말을 바꾼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미국은 사드와 관련한 절차가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하지만 강변일 뿐이다. 국방부의 당초 계획과 일정대로라면 사드는 올해 말까지 들어왔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도 빼먹었다. 사드 관련 보고 누락에 대한 조사보다 더 중점을 둬야 할 사안이 바로 여기에 있다. 왜 서둘렀는지, 왜 절차를 건너뛰었는지 차제에 가려낼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의 순서와 절차다. 진실을 밝히더라도 토끼몰이식 진실 규명은 군의 사기를 갉아먹는다. 많은 장교가 장관과 보고 누락으로 상징되는 군의 위상 추락에 속을 앓고 있다. 군의 상한 부분에 수술이 필요하더라도 전신마취는 안 될 말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서울 용산 국방부와 합참을 방문해 군의 사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집단인 동시에 국민이다. 군복을 입은 국민과도 소통이 필요하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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