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와 중도, 폐쇄와 개방의 대립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프랑스 대선이 7일(현지시간) 마무리됐지만 60년 만의 ‘아웃사이더’ 대통령 등장으로 프랑스 사회는 이전에 볼 수 없던 불확실성의 문을 열게 됐다. 정치기반이 유례없이 취약한 대통령의 등장으로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체가 후폭풍에 시달릴 것이라는 위기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다음달 11, 18일로 예정된 총선이 프랑스 정치의 미래를 결정하는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다음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프랑스 결선투표를 하루 앞둔 6일(현지시간) 중도 신당인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막판 지지율 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하는 한편 “누가 집권해도 성공적인 입법활동과 대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결선에서 마크롱과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 중 누가 승리해도 험로가 예상된다는 뜻이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기반이 약하다는 두 후보 모두의 ‘아킬레스건’이다. 이원집정부제인 프랑스 정치제도 아래서 여당의 의회 장악력은 필수적이다. 대통령이 외치를 맡지만 내치는 의회 다수당이 요구하는 총리에게 일임하기 때문에 여당이 의회를 장악하지 못할 경우 정치적 갈등과 정책 혼선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투표로 선출하는 국민의회(하원 격) 의석 수를 보면 사회당과 공화당이 각각 280석과 194석을 차지해 전체 의석(577석)의 82%를 점한 반면 FN 의석은 2석에 불과하고 앙마르슈는 아예 없다. NYT는 “두 후보가 이끄는 정당 모두 전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프랑스 대통령은 오직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할 때만 힘을 쓸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앞서 지난 4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다음달 총선에서 앙마르슈가 240~286석, FN은 15~25석을 각각 차지할 것으로 예상돼 과반 확보에 이미 비상이 걸린 상태다. 조사 결과 보수 공화당이 200~210석을 차지할 것으로 관측돼 대통령과 총리 소속 정당이 다른 ‘동거정부’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를 향한 국민들의 불만이 증폭된 점도 새 대통령에게는 부담이다.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으로 두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 외에 정치 자체를 불신하는 국민들까지 포용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두 후보 모두를 싫어하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투표 당일 외출금지, 빈 투표봉투 넣기, 기표하지 않은 투표용지 넣기 등 다양한 투표거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한편 미국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대선 막바지 해킹 공작이 기승을 부리며 기성 정치의 몰락으로 충격에 빠진 정치판을 한층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5일 마크롱 측 e메일이 해킹돼 내부문서와 재무자료 등이 유출되는 사건이 불거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배후세력으로 러시아와 미국 극우세력을 지목했다. 6일 AFP통신 등은 자칭 ‘이엠리크스(EMLEAKS)’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당선이 유력시되는 마크롱 후보를 겨냥해 전진당 관계자들의 e메일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고 전했다. 보안업체 파이어아이의 데이비드 그라우트 이사는 “아직 단정 짓기 어려워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면서도 “미국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공격에 쓰였던 수법과 동일한 방법이 사용됐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NYT는 “미국 극우파가 마크롱을 떨어뜨리기 위해 해킹 지원에 나섰다”고 전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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