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마다 게양했던 태극기를 이번에 처음으로 달지 않을 생각입니다.”
국가 상징인 태극기가 특정 단체의 시위 도구로 활용되자 3·1절 국기 게양 여부를 두고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이 고민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태극기 집회’를 열면서 자칫 정치적인 의사표현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8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종로구는 제98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참석자 전원이 태극기를 흔들며 3·1 만세운동을 재연하는 ‘태극기 물결행진’을 계획했다. 하지만 주관 부서는 행사가 태극기 집회로 오해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종로구 관계자는 “우려는 있지만 그렇다고 행사 자체를 변경하거나 취소하는 건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며 “이럴 때일수록 태극기가 지닌 진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강남구 등 일부 자치구에서는 ‘구청이 나서서 태극기 운동을 하는 이유’를 묻거나 ‘정치적 포석이 깔린 게 아니냐’는 민원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태극기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가 그려진 일회용 밴드를 나눠준 김성진(44)씨는 “태극기는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의 것”이라며 “태극기 밴드를 나눠주며 국가 상징인 태극기를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태극기 자체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항일 독립유공자와 유족으로 구성된 광복회는 27일 “태극기 사용의 남발로 특정한 목적을 실현하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3·1절을 맞아 국민 스스로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3·1 독립운동의 상징인 태극기에 대해 엄숙한 마음으로 존엄성을 가져주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정 세력이 정치적으로 태극기를 이용하면서 국민통합의 역할을 해야 하는 태극기의 의미와 그 가치가 오히려 훼손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며 태극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정·박우인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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