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회의장과 원로들이 27일 오후 회동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년 4월까지 하야하라”는 로드맵을 제안한 것은 대통령 퇴진이라는 특단의 대책 없이는 대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져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야권과 새누리당의 비주류는 대통령 탄핵을 위한 작업에 이미 착수했지만 탄핵 절차가 실제로 시행에 들어갈 경우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차기 대선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일러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국정이 ‘올스톱’되는 사태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사퇴 시점을 내년 4월로 제시한 배경에 대해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궐위 시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르도록 규정돼 있는데 현재 각 정당의 사정이나 형편을 보면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각 정당이 대선을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여러 현안을 수습할 게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정치권 원로들이 ‘대통령의 하야 선언→4월 하야’라는 로드맵과 함께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위한 총리 추천을 국회에 요청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현재 여야 정치권은 탄핵 절차에 집중하느라 책임총리와 관련해서는 논의의 첫발조차 떼지 못한 상황인데 정국이 탄핵 국면으로 넘어가면 여야 합의를 통한 총리 선임은 저 멀리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 전 의장은 이날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국회가 새 총리를 추천하면 박 대통령은 하야 전까지 2선으로 후퇴하고 총리에게는 내치와 외치를 포함하는 국정 전반을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박 전 의장은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마련 절차가 보류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의 제언이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고 국정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조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의장을 비롯한 원로들이 지금까지 드러난 대통령의 혐의만으로도 헌법을 유린한 사실이 입증된 만큼 박 대통령이 더 이상 국가원수로서의 지위 유지를 위한 자격을 상실했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 역시 이날 하야를 요구한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시일이 흐를수록이 민심이 들불처럼 거세지는 상황에서 탄핵을 통한 불명예 퇴진보다는 ‘질서 있는 하야’가 국민과 대통령 본인 모두를 위해 이로운 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헌법을 농단한 지도자”라며 “탄핵 절차가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는 당연히 인용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의장도 “오늘 각계 원로회의는 탄핵 절차 진행이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헌법 절차를 떠난 하야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다수 의견은 대통령이 명백한 시한을 정해 하야를 선언하고 여야는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위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이날 원로들은 여야 정치권이 하루속히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는 박 대통령 개인의 잘못과 시스템 문제가 함께 얽혀 있는 만큼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을 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로들의 이 같은 제안에도 불구하고 당장 개헌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정국의 주도권을 쥔 야권이 탄핵 절차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는데다 진영을 막론한 여러 세력이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각자의 주장들만 펼치고 있어 좀처럼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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