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작품은 종교음악부터 실내악, 교향곡, 협주곡, 오페라와 발레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들은 연주회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는데, 성악가인 필자의 입장에서 그의 훌륭한 러시아 가곡들이 가사가 러시아어로 되어 있어 음악인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차이콥스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일족 중에는 정식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는데, 차이콥스키는 이미 10살 때 작곡을 할 정도로 대단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법무성의 관리가 되어 안정된 생활을 하던 그를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게 한다. 그는 이곳에서 음악원의 원장이었던 안톤 루빈스타인에게서 작곡 지도를 받게 되고 이 천재를 알아본 안톤 루빈스타인의 격려와 지도에 힘입어 졸업하자마자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임명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곡가로서의 그의 업적들은 교수직을 벗어버린 후에 더 큰 빛을 발하게 된다. 그의 음악을 지지하는 부유한 미망인 나데츠다 폰 메크의 14년에 걸친 경제적 후원으로 차이콥스키는 교수직을 사임하고 오직 작곡에만 몰두하게 됐다. 이 둘의 관계는 매우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는데 서로 단 한 차례도 만나지 않고 오직 편지만을 주고받았다고 하며 그 편지의 양은 자그마치 1,204통에 이른다.
명성을 날리던 차이콥스키는 1893년 자신의 교향곡 제6번의 초연을 직접 지휘하고 난 뒤 9일 후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공식적으로 콜레라의 감염에 의한 사망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밝혀진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 귀족의 조카와의 동성애 관계가 알려지면서 비소를 마시고 자살했다고 한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기는 했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인파가 들끓어 약 8,000여 명의 조문객이 찾아왔었다고 하며 현재 러시아 최고의 음악학교인 모스크바 음악원의 정식 명칭은 그의 이름을 딴 차이콥스키 음악원이다. 그의 위대한 음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 분명 연주되고 있을 것이다.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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