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사진) 러시아 대통령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출범이 오히려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3일(현지시간) ‘푸틴의 가장 큰 문제: 미국이 더는 적이 아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브로맨스’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의 관계 때문에 지지기반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관측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양국 관계의 해빙기를 불러올 것이라서 호재라는 일반적 전망과는 다소 배치되는 듯하다.
가디언은 푸틴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으로 지지기반을 유지해온 터라 미국이라는 적이 사라지면서 향후 국정운영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에 따르면 러시아는 2012년 이후 ‘미국은 적’이라는 간단명료한 개념이 사회 깊숙이 스며들었다. 거리에는 “오바마는 재수 없는 놈”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자동차에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러시아 국영방송이 나서 카페나 미용실에 “우리는 오바마를 받지 않는다”는 표지판을 세우는 것을 장려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푸틴 대통령이 정부 차원의 이 같은 선전에 힘입어 미국으로부터 러시아를 구할 유일한 희망으로 간주됐다고 해설했다.
러시아에 우호적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은 푸틴 정권을 떠받치고 있던 이 같은 반미감정이 수그러질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가디언은 이런 위기에 개의치 않고 러시아 의회 의원들이 트럼프의 승리를 반기고 있다고까지 꼬집었다.
트럼프의 집권뿐만 아니라 서방의 전반적인 상황 급변도 푸틴 대통령의 기존 전략을 흔들 수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러시아가 그간 소수민족의 인권, 난민 정책, 진보 이슈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며 서방을 비판하며 대척점에 섰지만 이제 표적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영국이 반이민 정서 때문에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데다 각국에서 극우성향의 정파가 고개를 들고 있다. 가디언은 “러시아는 승리자로서가 아니라 패배자로서의 트럼프가 필요했다”며 “그들은 국제사회의 주류에 반대하는 행보를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나눈 브로맨스와는 별개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후에 푸틴 정권과 실제로 친근한 관계를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정부의 고위급 관리들은 트럼프의 승리에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러시아는 트럼프 승리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트럼프의 과거 발언에 집중하기보다는 그의 행동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도 트럼프의 승리가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개선할 것이라는 말하는 것은 아직 너무 이르다고 강조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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